한서(漢書) 곽광( 光)전의 이야기다. 서한(西漢)시기. 기원전 87년, 한무제가 세상을 떠나자, 여덟살 된 아들이
소제(昭帝)로서 제위를 계승하였다. 공신의 후손인 대장군 곽광은 한무제의 뜻을 받들어 황제을 보좌하며 국정에 관여하였다. 한소제가 21세로
죽자, 곽광은 한무제의 손자인 창읍왕(昌邑王) 유하(劉賀)를 제위에 앉혔다. 그런데 그는 음란하고 놀기만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국정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에 곽광은 유하를 폐하고, 한무제의 증손자인 유순(劉詢)을 제위에 앉혔다.
새로 제위를 계승한 한선제(漢宣帝) 유순은
국권(國權)을 주무르는 곽광을 몹시 두려워하였다. 한선제가 선조의 사당에 제사를 지내러 갈 때, 곽광은 직접 수레를 몰고 그를 모셨다. 한선제는
기골이 장대하고 날카로운 눈에 엄한 표정을 한 곽광을 보며, 수레 안에서 마치 등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若有芒刺在背) 참기 어려운 모습으로 떨고
있었다. 기원전 68년, 곽광이 죽자, 한선제는 비로소 이러한 느낌을 갖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芒刺在背(A thorn in
the flesh)란 몹시 불안한 상태 를 비유한 말이다. 경제 대란에다 정치 대란이라는 말이 나돈다. 시원찮은(?) 리더 덕분에 국민들은 늘
바늘방석에 앉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