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韓非子) 세림상(說林上)에는 경험의 소중함을 이야기한 대목이 있다. 춘추(春秋)시기,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춘추오패(春秋五覇) 중 제일의 위치를 차지하자, 많은 소국(小國)들은 제나라의 명을 받듬으로써 제나라의 보호를 받고자 하였다. 당시, 산융(山戎)이라는 나라가 제나라에 의지하고 있던 연(燕)나라를 침범하자, 환공은 산융을 공격하였다. 기원전 663년, 제나라는 산융을 크게 물리치고 도읍을 점령하였다. 산융의 국왕인 밀로(密盧)가 고죽국(孤竹國)으로 도망하자, 환공은 계속하여 고죽국을 공격하였다. 제나라는 봄에 고죽국을 공격하였으나, 고죽국의 장군인 황화(黃花)가 지형을 이용하여 응전하였기 때문에, 두 나라의 전쟁은 겨울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제나라 군대는 전쟁을 끝내고 돌아오려는데,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때, 함께 참전하고 있던 국상(國相) 관중은 이럴 때는 늙은 말의 지혜를 써보는 게 좋겠소(老馬之智可用也) 라고 말하고, 늙은 말 몇 마리를 골라 대열의 앞에서 마음껏 달리도록 하였다. 제나라 군대는 그 말들의 뒤를 따라 곧 출로를 찾아 귀환할 수 있었다.
老馬之智(An old dog for a hard road) 란 경험 많은 사람의 지혜 를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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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어] 노마지도(老馬知道). [출전]《韓非子》〈說林篇〉
늙은 말의 지혜란 뜻으로,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저마다 장기나 장점을 지니고 있음을 이르는 말.
춘추 시대, 오패의 한 사람이었던 제(齊)나라 환공(桓公:재위 B.C.685~643) 때의 일이다. 어느 해 봄, 환공은 명재상 관중(管仲:?~B.C.645)과 대부 습붕을 데리고 고죽국[孤竹國:하북성(河北省) 내]을 정벌하러 나섰다. 그런데 전쟁이 의외로 길어지는 바람에 그 해 겨울에야 끝이 났다. 그래서 혹한 속에 지름길을 찾아 귀국하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전군(全軍)이 진퇴 양난(進退兩難)에 빠져 떨고 있을 때 관중이 말했다. “이런 때 ‘늙은 말의 지혜[老馬之智]’가 필요하다.” 즉시 늙은 말 한 마리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전군이 그 뒤를 따라 행군한 지 얼마 안 되어 큰길이 나타났다. 또 한번은 산길을 행군하다가 식수가 떨어져 전군이 갈증에 시달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습붕이 말했다. “개미란 원래 여름엔 산 북쪽에 집을 짓지만 겨울엔 산 남쪽 양지 바른 곳에 집을 짓고 산다. 흙이 한 치[一寸]쯤 쌓인 개미집이 있으면 그 땅 속 일곱 자쯤 되는 곳에 물이 있는 법이다.” 군사들이 산을 뒤져 개미집을 찾은 다음 그곳을 파 내려가자 과연 샘물이 솟아났다. 이 이야기에 이어 한비자(韓非子:韓非, ?~B.C.233)는 그의 저서《한비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관중의 총명과 습붕의 지혜로도 모르는 것은 늙은 말과 개미를 스승으로 삼아 배웠다. 그러나 그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어리석음에도 성현의 지혜를 스승으로 삼아 배우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잘못된 일이 아닌가.”
[주] ‘노마지지’란 여기서 나온 말인데 요즈음에도 ‘경험을 쌓은 사람이 갖춘 지혜’란 뜻으로 흔히 쓰이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