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東晋)의 유명한 서예가인 왕희지(王羲之)의 다섯째 아들 왕휘지(王徽之:字는 子猷)와 일곱째 아들 왕헌지(王獻之:字는 子敬) 형제가 모두 병에 걸렸는데, 동생인 자경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형 자요는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찌 자경의 소식은 없는 것입니까? 그 얘가 이미 죽은 게 아닙니까? 라고 물으면서 조금도 슬퍼하거나 울지는 않았다. 형 자요는 즉시 수레를 타고 동생의 빈소로 달려가서는 동생의 관(棺) 위에 올라가 동생이 평소에 좋아하였던 거문고를 꺼내들고 타보았다. 그러나 거문고가 소리를 내지 않자, 자요는 이를 내던지며 자경아, 자경아, 너와 거문고가 함께 죽었구나(子敬, 子敬, 人琴俱亡) 하면서 한참동안이나 애통하였다. 한 달쯤 지나 형 자요도 그만 세상을 떠났다.
人琴俱亡은 인금병절(人琴幷絶) 이라고도 하며,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哀悼)의 정(情)을 비유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