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버리기(자포자기)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나 의리를 잊거나 어기면 그걸 ‘저버린다’고 한다. 그 ‘저버린다’의 ‘저’는 무슨 뜻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 ‘저’에 ‘자기’라는 뜻을 매기면 ‘저’를 ‘버린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저버리는 짓’은 ‘저버리기’다. 이 ‘저버리기’에 알맞은 한자말이 있을 법하다. ‘자포자기’는 어떨까.
‘이루’는 중국 황제 때의 전설적 사람인데, 볼심(시력)이 뛰어나 백 걸음이나 떨어진 곳에서도 털끝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맹자>의 그 ‘이루편’에 있는 말씀. “‘자포’하는 자는 더불어 말할 이가 없다. ‘자기’하는 자는 더불어 일할 이가 없다. 예의를 헐뜯음을 ‘자포’라고 한다. 내 몸이 의리에서 비롯했다고 할 수가 없음을 ‘자기’라고 한다.”
입을 열기만 하면 예의를 업신여기는 것을 ‘자포’라 하고, 자기의 몸이 의리와 함께하지 못하는 것을 ‘자기’라고 한다. 의리는 사람의 바른 길이다. 바른 길을 버리고 다니지 않는 것은 참으로 가엾은 일이다. 그런데 지금 일반적으로 약간의 뜻맛이 달라져 실망, 실의 따위로 ‘자포자기’함은 자기 자신을 버리고 천하게 여기는 것을 일컫게 되었다. 어쨌거나 ‘저버리기’와 ‘자포자기’의 궁합은 흥미롭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