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셋 - 사랑으로 풀어내는 웃음보따리
우덜은 선녀가 아니구만유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이 오는군요. 제겐 꼭꼭 숨기고 싶은, 솔직히 말하면 깨끗이 잊고 싶은 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악몽이 또 되살아나는군요.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연일 36-7도를 기록하던 8월 어느 날, 우리 가족은 더위를 피해 오토바이를 타고 조용한 바닷가를 찾았지요. 그 바닷가는 흙먼지 펄펄 날리는 농로로 가야하기 때문에 그때까진 외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아 백사장 깨끗하죠, 물 맑죠, 거기다 게, 고동, 바지락, 해삼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아무튼 며느리도 모르고(?) 우리만 아는 곳이 있었죠. 그 넓고 넓은 바닷가를 우리 네 식구가 전세냈으니 격식 차릴 것 있나요. 옷은 벗어서 바위에 올려놓고 물속으로 풍덩! 남편은 그냥 보통 집에서 입는 흰팬티 하나 걸치고 풍덩! 왜? 1년에 몇 번 입는다고 그런 걸 사냐며 못 사게 해서 애당초 남편은 수영 팬티가 없었거든요. 물속은 언제 더웠느냔 듯이 내장까지 서늘한 게 참 시원하데요. 아이들을 튜브에 태우고 온 바다를 밀고 당기며 휘젓고 다녔습니다. 쏴아-. 밀려오는 파도소리! 끼루룩 끼룩! 하늘을 나는 갈매기! 하하하, 호호호, 행복한 웃음 소리! 그날 무지무지 행복했습니다. 사는게 이런 거구나 하구요.
한바탕 놀고 나니 배꼽시계에서 태엽 풀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우리들은 민생고를 해결하려고 물에서 짐보따리가 있는 바위로 나왔습니다. 수박을 가르고 열무김치에 삼겹살 지글지글 지져 마늘 고추장 상추에 싸먹는 그 맛, 두 번 씹을 것도 없이 그냥 넘어가데요. 전 점심 먹은 그릇을 대충 챙기고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남편이 놀라서 소리치더군요.
"얼랄라, 옷이 없어졌다아-."
"거기께 워디 있겠찌-이."
"증말루 없다니께에-."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아무리 찾아봐도 옷은 간 곳이 없었습니다.
“우덜은 성녀가 아니구먼유. 나무꾼 아저씨 옷 돌려주세유...”
그러나 대답은 커녕 메아리도 없더군요.
“해마다 맡아놓고 다녔어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워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디야아?”
우린 그 어떤 도둑놈 중에서도 제일 치사한 도둑놈이 옷도둑놈이란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아이들은 어리니까 괜찮고 지도 수영복이 야하긴 해도 가릴 덴 다 가렸는데, 문제는 남편이었지요. 내려다보니 그림 참 좋데요. 물이 뚝뚝 떨어지는 흰팬티는 몸에 착 달라붙어 영 보기에 망측스러웠습니다. 왕솔밭 그림자가 거므스름하게 비추고 거기에 꼬불꼬불 삐집고 뭔가 나온단 말입니다. 그래도 겉옷만 훔쳐가길 망정이지 쫓아와서 팬티 안벗겨간 게 천만다행이라는 속 넓은 남편 말에 우린 한바탕 웃었습니다. 거기다가 남편은 젖은 흰팬티를 바위에 널어놓고 이러는 겁니다.
“우리가 세상에 올 때 누드로 왔지 실오라기 하나라도 걸치고 나온 놈 있음 나와 보라 그래.” 하며 하늘을 향해 두손 번쩍 들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겁니. “나는 자연인이다.” 저요 결혼해서 애 둘 낳고 살았지만요 깜깜한 밤에만 봐서 대충 그러려니 짐작만 했었는데 자세히 보긴 그 날이 처음이었다니깐요. 그나저나 바다에서 집까지 오토바이로 30분 이상이 걸리는데... 어떻게 해야 소문 안 내고 갈 수 있나 고민을 했지만, 결론은 천상 야밤에 폭주족이 되는 도리가 없더라구요. 남은 해 채우느라 고동, 게, 해삼, 바지락 잡어 저녁까지 거기서 해결하고 시간을 끌었더니 드디어 해가 지고 어두워졌습니다.
“아! 집에 가는구나. 집에 가서 옷을 입게 되었구나.”
빨리 가서 옷을 실컷 입어보고 싶습니다.
“지금 출발허면 집에까지 집행으로 가니께 단단히 꼭 붙잡아라이?”
남편이 흰팬티만 걸친 채 오토바이 탑승규칙을 강조하면서 시동을 걸었습니다. 우린 떨어지면 끝장이다 싶어 매미처럼 착 달라붙어 팔에 젖먹던 힘까지 꼬옥 붙들었습니다.
“자아- 간다이. 부릉 부릉 앵앵애애앵-.”
바퀴에 가속도가 붙은 오토바인 뵈는 게 없이 겁나게 달렸습니다. 해수욕 철이라 꼬리를 문 차량 사이를 곡예하듯 쌩- 하며 달려가는데 지나가는 우릴 보고 “바음 지나간 사람 벗었어? 입었어?“ 그날 여러 사람 햇갈렸을 겁니다. 15년 전 번개처럼 달리덩 누드 오토바이에 놀란 분들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러나 해수욕장에서 남의 옷 슬쩍하는 도둑님들, 올부턴 삼가주십시오.
우덜은 선녀가 아니구먼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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