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셋 - 사랑으로 풀어내는 웃음보따리
인간 물침대의 비극
지금 저는 분위기를 바꿔 조용히 지금껏 살아온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펜을 들었어요. 제가 지금이 1/4쪽을 만난 것(남들은 이럴 때 다들 반쪽이란 표현을 쓰더군요. 하지만 남편 말을 빌리자면 우린 반쪽+반쪽이 아닌 3/4쪽인 저, 1/4족인 자기가 결합된 거라나요? 기가 막혀서..!) 우쨌든 우리의 첫만남은 쬐끔 독특했어요. 8년 전이었어요. 첫직장을 그만두고 아는 분 소개로 다른 직장을 다니게 되었지요. 첫직장은 많은 남직원에 여직원 딸랑 저 혼자라 공주꽃인 양 팔랑거리고 다녔는데, 옮긴 직장은 사정이 좀 틀리더군요. 남직원들은 늘 미니스커트인 내숭뭉탱이 은자에겐 야들야들 간들어지는 목소리로, "미스 방-." 너무나도 몸과 마음이 솔직한 저에겐 투박한 큰소리로, "이양-!" 이렇게 호칭부터 차이를 두니 저의 스트레스는 가슴을 뚫고 나와 미친 듯이 날뛰었고, 첫출근부터 예전의 공주꽃인 전 향단이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치사한 인간들, 방양이 막대걸레로 청소라도 할라치면 "미스 방-, 개미허리로 무슨 일을 합니까? 그냥 쉬고 저한테 걸레 주이소." 미스 리인 제가 청소할 때면 "어이, 이양요. 내 발밑에 와 안 밀고 그냥 갑니까? 그라고 이 휴지통도 좀 비워주이소." 방양이 덥다고 한마디만 해도 "미스 방-, 에어컨 캐주까요?" 미스리가 더워 에어컨 바람 쐬고 있으면 "이양, 에어컨 바람 그 덩치로 다 막지 말고,저 - 짝 저게 선풍기나 쐬소." 뭐 매번 이런 식이니 한때 공주꽃인 제가 가만 당하고만 있겠습니까? 저는 우째든지 이 만행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했어요. 그래서 결심을 했지요. '그래 어쩔 수 없지. 이 황금 같은 지방들을 잠시 하늘에 맡기는 수 밖에..' 그래도 24년 동안이나 비좁은 땅에 옹기종기 모여 살아왔던 살들인테 빼야만 될 숙명이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어요.
지방!! 나보다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사후에 다시 만날 걸 약속하며 살 빼는 방법들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쉽게 살이 빠진다는 모든 약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운동으로 결정을 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하늘로 올라갈 지방들 보기 미안해서라도 쉽게 내 한몸 힘들이지 않고 편하게 살 뺄 순 없었거든요. 집 근처 에어로빅 학원 앞까지 갔다가 학창시절 무용기피증이 도질 것 같아 포기하고 회사 근처에 위치한 헬스장엘 가기로 했어요. 퇴근후 간단한 운동복을 들고 그곳의 문을 여는 순간 숨이 막힐 듯 모조리 절 쏘아보는 시선들을 몽땅거리 하나로 모아 오독오독 씹어먹고 용감하게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보란 듯이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대로 아주 아주 열심히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 며칠을 죽자살자 아무 생각 없이 했지만 곧이어 약간의 착오를 가져오게 하는 인물이 생겨났어요. 그때 계절이 한창 더운 찜통 같은 날씨인 여름이라 운동으로 인해 아름다운 물방울로 생을 마감한 지방들의 흔적, 다시 말해 근적거리는 땀들을 씻지 않고는 그 먼 집까지 도저히 갈 수가 없겠더라구요. 그래서 헬스장 내의 샤워실을 이용하게 되었지요. 남자들이야 여럿이 함께 하겠지만 저야 그럴 수 있습니까? 문 잠가 놓고 혼자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샤워실을 사용할 땐 남자들이 양보도 해주고 기다렸다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근데 언제부터인지 누군가 일부러 저보다 5분 더 빨리 선수쳐 샤워실을 점령하더군요. 제가 누굽니까? 질 수 있습니까? 저는 다음날 5분 더 빨리, 그러니깐 본래 운동시간은 10분 단축된 셈이고 그 누군가의 샤워시간 5분전에 다시 탈환을 했죠. 그 인간도 다시 저의 작전을 읽었는지 서서히 모습을 보이더군요. 제가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있을 때였어요.
"아줌마 저녁시간에 집에 아이들 밥 굶기지 말고 저녁이나 해주지, 남자들 버글버글한 데는 뭐한다고 옵니까? 그라고 고것도 윗몸일으키기라고 합니까? 아줌마는 감각적으로다 뱃살만 접치믄 다 올라왔다 싶겠지만은요, 옆에서 보니 정말로 딱합니다. 하기사.., 이해는 됩니다. 모가지만 쑤그리도 뱃살이 접치는 걸 우짜겠습니까? 열심히 해보이소."
"아저씨요, 지금 뭣이라고 했는데요? 아줌마가 어떻고 모가지, 뱃살? 그러는 아저씨는 그 키에 그 몸에 뭐한다고 이런 데 와서 돈 뿌립니까? 그 돈 있시믄 불우이웃돕기나 하지 그럽니까?"
그와 난 이날 이후 더 치열한 샤워실 선제공격을 해댔습니다. 그러다보니 1시간은 해야 될 운동시간이 5분씩 앞당겨져 삼사십 분이 되지않겠어요. 그래서 일부러 5분씩 늦추면 그 인간도 늦추고... 그러던 어느 날 제 생애 최대의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저는 여느 때처럼 운동을 하고 샤워실로 향했지요. 문 걸어놓고 땀에 절은 운동복을 벗으며 밖에서 한발 늦었다며 땅을 치고 있을 그 인간 생각에 몹시도 즐거웠더랬습니다. 저는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며 수도꼭지를 틀려는데 어디서 이상야릇한 소리가 들리지 않겠어요? 무슨 소리인지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연이어 들리는 소리 '드르렁-.' 세상에 그 인간이 저 구석에서 발가벗고 웅크려 졸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저는 순간 너무너무 놀라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다 질러댔고, 얼떨결에 자다 놀란 그 역시 반쯤 감긴 눈으로 더듬거리며 올누드 자세로 일어났어요.
"뭐, 뭐, 뭐꼬?"
여전히 반쯤 잠속에서 헤매는 그의 놀라운 행동에 저는 더 놀라 목이 터져라 소리를 찔러 댔어요. 그런데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면서도 왜 그렇게 저의 시선은 한쪽으로 쏠리는지요?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한 그는 앉았다. 섰다, 등돌렸다, 옆으로 돌겼다. 호들갑이었어요. 근데 저는 어떻게 하고 있었냐구요?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그 자리서 쭈그려 앉았으면 괜찮을 걸 손에 들고 있던 수건으로 가린다고 가렸는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쉽습니까? 수건 한장으로 해결될 몸매였으면 제가 이 헬수장을 찾았겠어요? 쭈그려 앉는 게 백번 나았겠죠. 샤워실 내의 한바탕 사건도 끔찍한데 샤워실 밖에서 들려오는 웅성대는 사람들의 관심도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그가 먼저 나가고 저는 고개 푹 숙여 말도 못한 채 거의 뛰는 것도 모자라 제 몸매에 알맞은 몸통구르기로 그 자릴 빠져나왔어요. 물론 당연히 그 헬스장엔 발도 안 붙이게 되었고, 혹시나 헬스장 다니는 사람들이랑 오며가며 만날까봐 회사도 그만뒀어요. 그리고 며칠 뒤 헬스장에서 연락처를 알았다며 그가 집으로 연락을 해왔습니다. 대뜸 책임지라는 그의 말대로 지금은 한 아파트의 욕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혼 전에는 제 몸에 붙어 있는 건 하나의 작품이라며 절대 살을 못 빼게 하더니 신혼여행 첫날 지나고 부터 전 또 다시 처녀 적 고민이 시작되었어요. 달콤했던 신혼 첫날밤을 지낸 다음날 아침, 하도 숨쉬기가 거북하고 온몸에 압박감이 느껴져 눈을 뜨니 글쎄 이 사람이 제 몸위에 엎어져 자고 있는 거예요.
"자기야."
불러봤더니 제 옆에 있던 자기 베개를 껴안으며 이러는 겁니다.
"자기 벌써 일어났어? 자기야, 호텔이라는 게 참말로 좋은 곳인갑네. 이 침대만 해도 마치 물침대마냥 아주 편안하고.... 이것 봐, 스트링이 움직거리는 게 말로만 듣던 인체공학 침대인갑다. 그자? 우리도 나중에 돈 벌면 이런 침대 사자. 알겠제."
세상에 저는 힘들어 죽겠구만 심장 뛰는 소리를 인체공학 설계에 의한 스프링의 진동이라 설명하는 그가 정말 미웠습니다. 신혼 둘째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 저는 어제 아침을 떠올리며 머리 위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잤죠. 근데 자꾸만 배꼽을 찔러대는 게 아니겠어요.
"자기는 와 자꾸 배꼽을 찔러대노?"
전 짜증섞인 투로 물었어요. 그런데 곧이어 들리는 남편의 대답은 절 비참하게 했어요.
"자기야, 정말 미안해. 나는 말이지 사람의 똥침을 한다는 게 그렇게 됐어. 내는 이불 속에서 불룩 솟은 게 엉덩인 줄 알았어. 내 생각이 짧아 여기까진 생각을 못했어. 정말 미안해 자기야."
마지막 신혼밤을 보내게 될 셋째날 밤. 그가 먼저 샤워하고 저는 적당량의 향수를 부린 채 샤워를 마치고 나왔지요. 욕실 문앞에 서 있던 남편은 뭔가 큰 결심을 한 것 같은 표정으로 말하더군요.
"자기야, 오늘은 우리 신혼 마지막 밤이니께니 내가 여짝에서부터 저 침대까지 들어 안아서 갈게."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저는 3/4쪽, 남편은 1/4쪽이니 제가 걱정이 안되게 생겼습니까?
"자기야, 그라지 말고 그냥 내가 자기 안아서 가자."
"자기는 무슨 소리고? 내도 남잔데 이거 하나 못 할까봐."
저는 굉장히 불안한 마음으로 그의 목에 두 팔을 감았어요. 하지만 20분이 지나도록 그 이상의 진척이 없었어요. 해도해도 안되는지 저보고 그 자리서 누우라고 하더군요. 저는 시키는 대로 했지요. 곧이어 취하는 남편의 자세란 저의 두 다리를 자신의 양쪽 옆구리로 가져가더니 이건 무슨 송장 끌고 가듯 질질 침대까지 끌고 가는 거 있죠. 낭만적인 밤을 만들어주겠다는 그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저의 잠옷은 질질 끌려간 탓에 배꼽위까지 '때구르르르'말려 올라간 채 침대까지 아니 침대매트에 두 다리만 걸쳐진 자세로 도착할 수가 있었어요. 그래도 지금 이렇게 예전을 떠올려보면 그때가 그립습니다. 지금은 이런 시도도 안한다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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