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셋 - 사랑으로 풀어내는 웃음보따리
책상을 지켜라 - 이현지(여.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진입에 실패하고 외곽에서만 7년째 돌고 있는 30대 주부입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건만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대단한 기업에서 10년째 근무하고 있는 남편의 엄청난 월급만으로는 서울 진입은 커녕 제 드레스비도 안나오는 것 같아 몇 푼이라도 보태볼 요량으로 조무래기들도 가르쳐보고, 조그만 사무실에서 잡일도 해봤는데, 점심값 내고, 파마하고, 스타킹 사신고, 가끔 보건복지부에 좀 내고, 교통부에 보태고 하고 나니 남는게 없더라구요. 이럴바엔 부족하지만 남편 월급만으로 알뜰살뜰 쪼개서 꾸려보는 게 현명하겠다는 생각읗 했습니다. 매달 25일이면 꼬박꼬박 월급봉투 가져다 주는 남편이 내심 든든했습니다. 사업하는 남편을 둔 친구들의 피를 말리는 궁핍을 지켜보면서 '내가 뽑긴 잘 뽑았지! 다달이 쥐꼬리만큼이라도 받아오는 게 어디야?' 고맙고 대견했죠.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 신문이나 드라마에서만 듣던 명퇴나 조퇴의 바람이 남편의 회사에도 불기 시작했다는 비보를 접한 건 작년말, 몹시도 춥고 바람이 사납게 불던 어느 날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7시면 '땡'하던 사람이 20분이 지나서야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내 기다리지 마라."
"언제까지."
"정년퇴직 때까지."
"그렇게 오래?"
"오늘 김차장 보따리 쌓다 아이가. 명퇴국 묵었다."
명퇴국!
순간! 바람을 등진 채 절벽 끝으로 내몰린 듯 명치끝이 시리고 다리가 떨려왔습니다. 아침에 골목 끝에 세워져 있던 버려진 군고구마통이랑 시장통 어귀에서 풀빵굽던 지치고 초라한 아낙네의 뒷모습이 퍼뜩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우짜노, 우짜노. 자기 회사는 괜찮다고 안했나?"
"기습당했다. 이게 폭탄이라 카믄 내도 쓸리갔다 아이가. 김차장은 바로 내 뒷자린데... 아이구 무시라. 나쁜 놈들이 그새 책상까지 다 치웠다 아이가. 니 각오 단디 하그라. 내는 절대 못 나간다. 여기서 묵고 자고 해서러도 내 자리 지켜야 안되겠나."
언제는 자기가 차세대 주자며, 본부장의 오른팔이며, 팀 내의 아이디어 뱅크에 떠오르는 전설이라더니... 해서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가 물밀듯 들어와 본부장이 긴장한다는 둥, 자기 없으면 회사는 셔터 내린다는 둥, 여차하면 사표 던지고 나온다는 둥, 큰소리칠 때는 언제고 지금은 잘난 책상 하나 지키자고 저렇게 목숨거나 싶어 무지 실망스럽더라구요. '주변머리 없는 인간, 그래도 회사에서는 인정받는구나 싶어 든든했는데... 믿었던 내가 나쁘지...
"그래 자기야, 집은 걱정마그라. 무슨 일이 있어도 틈을 보이면 안된데이."
잘난 남편이 직장에서 떨려 나왔을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저는 몹시 붕안했습니다.1 그리 똑똑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혹은 물려받을 재산도 없고, 벌어논 돈도 없고, 누구처럼 처가가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건강하기나 해? 위장병에, 편도선염에, 축농증에, 꽃가루 알레르게에 치질까지... 밝혀낸 것만 해도 종합병원 수준인데. 성격이나 좋아? 7남매 막내라 독선적이고 이기적인데다 고집은 얼마나 쎄? '아부'절대 못하잖아? 아무리 생각 해도 그이의 퇴직은 곧 저의 불행이자 재난이었습니다. 건강하고 성격좋은 제가 바로 군고구마통 끌고 나가거나 모래등짐이라도 날라야 할 판이라구요? 7년이나 살았으니 물릴 수 도 없고. 지캉 살다보면 드레스 입고 파티에 참석할 날도 있을 거라며, 봄이면 필드에서, 여름이면 해변에서, 가을이면 별장에서, 겨울이면 스키장에서 벽난로에 장작불 '따닥따닥' 치워가며 인생 즐길 날 있을 거라더니 벽난로에 장작불은 커녕 장작불 때서 군고구마 굽게 되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어요. 10시가 넘어서야 기진맥진해서 돌아온 남편은 힘 없이 제 품에 쓰러지며 "자기야, 내는 자기만 믿는데이..." 이러는 겁니다. 머리에서 김나데요. 뭐시라, 내만 믿는다고? 자기만 믿으라고 큰소리칠 때는 언제고, 자기만 믿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그럴 땐 언제고. 먹을 거 안 먹고, 입을 거 안 입고, 3년이나 부은 내 적금! 내 피 같은 700만원 해약해서 가져가더니 그게 우째 됐노? 떡은 커녕 고물도 없더라. 내 말대로 튼튼건설이나 양심상사에 넣었으면 이자돈은 벌었지. '한보'는 와 사노? 와 사? 자기만 믿고 떡 700만원어치 잘 묵었다. 뭐? 내만 믿는다꼬? 툭하면 '니가 뭐 아노?' '니가 뭘 안다고 나서노?' '니 그래 잘 아나? 그라믄 니가 남편 하거라.' 요러더니 바등에 불 떨어지니까 내만 믿는다꼬? 어림없다. 당장 나가서 돈 벌어 오거라 마!' 하고 등 떼밀어 내 쫓고 싶은 마은 굴뚝 같은 걸 수양한다 생각하고 침 한번 '꿀꺽' 삼킨 후 말했습니다.
"그래. 자기야 내만 믿어라."
그리고 등 두들겨 재웠습니다. 그날따라 다리도 못 뻗고 옆으로 잔뜩 오그린 채 새우잠을 자는 남편을 보며 측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도 구슬픈 가락으로 힘없이 골더군요. 드디어 아침이 어김없이 밝아오고 저희는 머리를 맞대고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첫째, 절대 책상은 고수한다. 둘째,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한다. 셋째, 되도록 윗사람 눈에 뜨이지 말되 사적인 자리에서는 손이 발이 되도록 아부한다. ... 등등. 일단 마음을 정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담담하고 당당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책상 뺏어가도 문제없어. 내 뒤에 소파 있어."
엊그재까지만 해도 꽁지 내리고 제 품에 쓰러지더니 하룻새 용기백배한 남편은 보무도 당당하게 새벽길을 달려나갔습니다. '불쌍한 인간, 빽도 줄도 없이 몸으로 막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구나.' 이런 남편이라 생각하니 가슴 시리게 측은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다면 한다는 거 아닙니까. 힘으로 버티겠다는데 누가 건드리겠습니까? 그날부터 남편은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서 책상 앞에 앉았으며, 본부장, 전무, 이사, 팀장까지 다 퇴근하고 야근하는 직원들까지도 다 나가야 비로소 안심하고 책상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점심시간엔 도시락 시켜먹구요. 틈을 보이면 안되니까요. 위에서 보기에도 열심히 일하는 것 같잖아요. 어쩌다 외출할 일이 생기면 차마 발길이 안 떨어져서 저만치 가다 돌아보고 또 저만치 가다 돌아보고... 거래처 가서도 10분마다 전화를 한대요.
"나 금방 들어갈 거다."
"나 지금 출발한다."
"나 거의 다 왔다."
하루는 예기치 않은 접촉사고로 출근시간에 10분 늦게 도착하게 됐더래요. 현관에서 3층 사무실까지 뛰어 올라가는데 불과 2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머리끝이 서고 등에서 땀이 나더래요. 사무실 문을 벌컥 여는 순간 햇살 한점 들어오지 않는 구석진 자리에서 초라하게 웅크리고 있는 남편의 책상이 눈에 들어오더래요. 그 감격이란! 잃었던 자식을 찾은 양 책상에 볼을 비비며 가슴으로 울었대요. 그 광경을 보고 실장님이 그러셨더래요.
"은행나무 침대가 따로 없구마!"
그러던 중 또 한명의 조퇴자가 발생했습니다. 사장으로부터 '친전' 이라고 뻘건 도장이 찍힌 편지가 조부장 앞으로 날아들었던 겁니다. 속칭 그네들끼리 통하는 '폭탄' 이었습니다. 생각없이 봉투를 연 조부장은 '찍' 외마디 비명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이틀 후였어요. 나른한 오후를 가르고 전화벨이 짜증스레 울렸습니다. 왠지 불길한 예감에 손이 떨렸습니다.
"여보세..."
전화를 받고 제가 미처 '요!' 도 끝나기 전에 "자, 자, 자, 자기야, 와, 와, 와 왔다..." 울음섞인 남편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오긴 뭐가 왔다고?"
"치, 치, 친전... 내만 받은 거 아이다. 김과장, 오과장, 정차장도 받았다."
"그 사람들도 뜯어봤대?"
"정차장만! 쫙 찢어서 쓰레기통에 내삐리고 담배 한 대 빼서 밖에 나갔다. 마음 정리하고 있지 싶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싶어 막막하다면서도 후련한 감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자기야, 낙심 말거라. 이게 제 2의 기회가 될지 누가 아노? 오히려 잘됐다. 자기도 확 찢어서 내버리고 온나. 소주 한 잔 하자."
대답도 없이 수화기 저쪽에선 '니가 뜯어라, 내가 뜯는다.' 웅성웅성 소란한 소리가 나더니 남편은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충격받고 쓰러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1시간 후 제가 전화를 걸었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남편의 목소리는 침착했습니다.
"자기 괜찮아?"
"괜찮지 그럼 뭐..."
"뜯어 봤어?"
"별거 아니다."
"뭐라고 쓰여 있는데?"
"뭐. 별로..."
"뭔데?"
"아! 그냥 뭐... 보... 보름달싸롱에서... 내부수리 끝났다고..."
저! 그냥 뚜껑 열렸습니다. 남편은 소파를 점거당하는 줄 알고 불안해 했지만 그는 오히려 웃으며 떠났습니다. 모두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채.
"지는 벌써 맘 묵고 있었더라. 사업을 할랑께요. 마누라가 미장원 하믄서 좀 모아논 게 있었더라."
그날부터 저에게도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저랑 눈만 마주치면 한숨을 들익쉬고 내쉬고... 바늘 방석이 따로 없었어요. 분위기 좀 역전시켜보려고 "자기 말대로 괜히 여자가 몇 푼 벌어볼려고 나서면 집안 꼴이 어수선해지고, 이 불경기가 쪽박차기 딱이지뭐. 남편 기만 죽이고 그지?" 그러자 남편은 저를 빤히 보더니 말했습니다.
"남편 기 안죽더라. 이대리 봐. 기고만장하던데 뭐. 보따리 싸서 집에 들어가자마자 마누라가 통장 두 개를 '척' 내놓으면서 '당신 하고 싶은 거 하이소.' 하더래잖아. 되는 집안이지. 영업부 임과장 알지? 마누라 보험회사 다니잖아. 1년 좀 넘었는데 보수가 임과장보다 훨씬 많대지 아마. 그자식은 요즘 배짱이잖아. 오늘 전무실에 고개 바짝 들고 들어가더라니까. 뭘 믿고 그러는지..."
“당신은 그게 그리 부럽나?”
“부럽기는 나 그런 놈 아니야, 마누라 덕보고 살 놈으로 보여? 나 절대 그런 놈 아냐!”
“그래 자기야, 돈 한 푼 안 벌어와도 살림 잘하고 건강하면 그게 버는 버는 거야. 아직 젊은데 뭐.“
그러나 남편은 제 말을 듣는지 마는지 신문만 신경질적으로 뒤적거리더니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봐라! 여기 구민회관에서 실비로 도배기술 가르쳐 준단다. 아이구! 취업 알선까지. 부업으로 하면 짭짤하겠다. 이런! 남자면 내가 가겠구만 주부대상이라네, 의욕있고 건강한 주부들만 모신단다.”
치사하고 더러워서 구민회관도 찾아갔지요. 영세민 우선이라 자격 미달이었어요. 남편의 노이로제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동문선배라고 호형호제하며 따르던 박차장마저 회사를 떠나자 의지할 데 없는 남편은 개발부 김차장처럼 6년 전 창립기념일에 받은 우수사원 표창장을 복사해서 책상 밑에 끼워두겠다고 우겼습니다.
“사장 표창장 붙은 책상을 어느 놈이 치우겠어?”
그런데 옆자리의 오과장은 책상보다 명패에 신경을 더 많이 쓰는 모양이었습니다. 각자의 책상위엔 부서명과 직함 그리고 이름이 새겨진 명패가 올려져 있는데, 부서와 직함은 고정돼 있지만 이름은 카드처럼 끼웠다 뺐다 할 수 있게 돼 있대요. 사장과 사돈의 팔촌의 이웃사촌인 오과장도 내심 불안했던지 퇴근할 때면 명패를 캐비닛 위 저 높은 곳에 까치발로 올려놓고 가면서 말한답니다.
“명패만 있으면, 내는 소파에 앉아도 떳떳해!”
덩치 큰 책상보다 관리하기 쉬운 명패를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죠. 그러나 히트는 엉뚱하고 순진하기로 유명한 김대리였습니다. 명패에다 아예 이름카드를 절대 못 빼게 종이를 꾸겨서 열심히 끼워 넣고 있었대요. 옆에서 실장님이 지켜보는 줄도 모르고서.
“봐라, 김대리! 니는 평생 대리로 있을끼가? 과장 시키줄라 했더니 안되겠구마.”
“실장님, 지는 진급 안 해도 되는구만요. 만년 대리라도 월급만 매달 주면 되지라. 어제 20년 만기적금 넣었응게 적금 탈 때까지 버텨야지라.”
그럭저럭 한달이 지나 고맙게도 월급을 타게 되었습니다. 봉투를 내밀면서 남편은 말했습니다.
“내 피와 땀이다. 한 푼 쓸때마다 내 살 뜯어간다 생각하고 애끼쓰거라.”
지난달과 달리 봉투가 좀더 두툼해진 것 같아 세어보니, 야근수당이 꽤 붙어 있었습니다.
“자기야, 이러면 안되지, 화를 자초하는 거다.”
“왜?”
“안그래도 회사에거 경비절감한다고 책상들 빼가는데, 자기는 거기다 수당까지 받아가니 위에서 알아봐라. 감원대상 0순위다.”
준비상사태였습니다. 해서 그 다음날부터는 나의 야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마라. 일명 이순신 작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성공적이었습니다. 평소 나는 야근이 싫어요. 라고 외치고 다녀 이승복으로 통하던 남편이 매일같이 야근을 하는데다 수당을 신청하지 않으니 주위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쯧쯧...! 사람 하나 버렸어.”
“돈도 싫고 인간도 싫대.”
“집에서 쫓겨났잖아.”
등등 별의별 루머가 돌았지만 남편은 끄떡 없었습니다. 대쪽같고 무뚝뚝하던 남편은 명퇴의 위기 앞에서 얼굴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부장님에게 결재판으로 뒤통수를 얻어맞아도 눈 한 번 꼴시는 일이 없이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남편은 이런 마음으로 읏으며 물러나와 영광스럽게도 전무님과 식사라고 함께 할라치면 옆에 앉아서 젓가락까지 숟가락 옆에 놓아주고, 물수건은 오른쪽에, 생선토막은 밥그릇 앞에 당겨드리고, 고기는 타지 않게 잘 뒤적여 앞에다 쌓아드리고..등등 그러나 결정적인 아부의 극치는 여기 또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100% 미국산 면행주를 들었다 놨다 눈독을 들이기 시작하길래 연유를 물어보니, 전무님이 난을 애지중지하시는데, 잎이라도 닦아드리는게 도리 아니겠냐고... 집안의 유일한 녹색식물인 행운목 수반에 담배꽁초 끄는 사람이 그렇게 얘기하더군요. 아부도 이쯤되면 질환의 경지에 온 게 아닌가 해서 요즘은 잠이 오지 않습니다. 차라리 군고구마통 끄는 게 마음 편할 거 같기도 하고... 혹시 MBC앞에 목 좋은 자리라도 있으면 연락 주세요. 지루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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