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향기가 코끝을 자극하는 푸른 계절입니다. 저는 24살의 꽃다운 나이라고 하기엔 약간 시들어가는 꽃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저는 푸릇푸릇한 영계라고 자부하고 살아간답니다. 제가 왜 이렇게도 영계라고 강조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답니다. 저의 어릴 적 18살 때의 황당한 얘기를 들어보시면 아-, 그렇구나 하실겁니다. 지금부터 7년 전 제 나이 18살 때에 감기가 심하게 들어서 병원에 갔던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구미에 있는 모 종합병원 접수 창고에서 접수를 마치고 기다리는데 "손태영씨 2층에 있는 내과로 가세요."하는 소리에 의료보험 카드와 접수증을 가지고 2층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내과에 갔더니 글쎄 이번에는 "복도 끝에 있는 소아과로 가세요."하질 않겠어요. 저는 "예?"하고 되물었죠. 그런데 그 간호사는 무신경으로 "복도 끝에 있는 소아과로 가세요."하는 겁니다. 전 다시 이의를 제기했다가는 한마디 핀잔을 받을 것 같은 분위기라서 일단 시키는 대로 하자고 결심했고 복도 끝에 있는 소아과로 갔답니다. 그때가 고2, 다 큰 처녀가 웬 소아과냐? 궁시렁대면서 소아과로 들어섰더니 미끄럼틀이며 그네, 여러 가지 장난감이 놀이방처럼 꾸며져 있었습니다. 간호사에게 보험카드를 내고 돌아서는데 그 간호사는 또 제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아기는 놀이터에서 잠시만 놀려 주세요."
이렇게 말하는 간호사를 저는 그저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그 간호사는 제가 당연히 보호자인 줄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저는 오늘은 뭔가 일이 자꾸 꼬이는 날인가 보다 하고 빨개진 얼굴로 의자에 앉아서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한술 더 뜬 충격적인 호출이 들리는 겁니다.
"손태영 어린이, 들어오세요."
간호사 언니의 목소리와 함께 제가 벌떡 일어나 들어갔더니 자꾸 제 얼굴만 쳐다보면서 아래위로 쭉 훑어보더니 자꾸만 제 뒤쪽을 돌아보더군요. 아마도 저를 보호자인 줄로만 알고 아기를 찾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창피하던지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은데도 꾹 참고 병실에 들어서는데 소아과에 들어온 환자들은 다들 체중을 재어야 한다는 게 아닙니까? 그런데 문제는 체중계가 그냥 보통 체중계와는 다른 웬 아기 바구니 체중계인 것입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바구니에 두 다리를 올리고 체중계에 올라서자 소아과 병실에 모인 보호자(아줌마)들의 이상한 눈길과 표정들이 저를 향했습니다. 정말 창피했습니다. 이렇게 첫 번째 관문에서 개망신을 당하고 진료실에 들어서자 이번에는 의사 선생님이 멍하니 위아래로 쭉 훑어보시더니 자꾸만 차트를 뒤로 넘겼다 앞으로 넘겼다 하는 겁니다. 그래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간호사의 눈치에 의사선생이 청진기를 대고선 웃옷을 걷으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소아과 의사생활 이날까지 하면서 이렇게 성숙한 소아는 처음일세."
하시면서 "허허"너털웃음을 지으시는 겁니다. 알고 봤더니 만으로 15세까지는 소아라고 하는데 제가 호적상 2살이나 작고 또 생일이 지나지 않아서 집 나이보다 3살이나 적은 15살 손태영 어린이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진료가 끝난 뒤 약국에서 약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런데 소아과 약은 따로 타는데 마이크에서 OO아기, OO아기 하고 부르는데 어김없이 손태영 아기 하고 제 이름 석자가 불려지는 게 아닙니까? 어이쿠! 고개를 숙이고 약을 타는데 주사가 있다고 하더군요. 정말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꼭 맞았습니다. 소아과 주사실에는 침대가 서너 개 정도 놓여 있을 뿐, 문이라고는 따로 없는 것입니다. 주사실에 들어섰더니 두 명의 아기가 엄마의 보호 아래 주사를 맞고 있는게 아닙니까. 저도 그 틈에 끼어서 간신히 주사를 맞긴 맞았는데 문은커녕 커튼조차 없는 주사실에서 하얀 엉덩이를 다 큰 처녀가 드러내고 주사를 맞자니 정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더군요. 이렇게 병원에서 약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약 봉투를 열어보고 저는 정말 울고 싶어졌습니다. 빨간 딸기향의 물약과 가루약 몇 봉지가 들어 있었걸랑요. 황당함과 당황함을 한꺼번에 경험을 해서인지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입가에 웃음이 번지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