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새댁도 사람인데 - 이원백(남.충북 충주시 교현2동)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제가 정규교육이라고는 겨우 일정시대 일주일에 한 시간씩 겨우 2,3년을 배우다가 말았으니, 무슨 글을 쓸 용기가 나겠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서툰 글로 편지를 보내니 잘 읽어주십시오.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루하고 고통스러웠던 6.25사변도 휴전조약이 성립되어 드디어 총성이 끊어지고 휴전이 되면서 지금껏 한국의 모든 남자들은 국방의 임무를 띠고 징병령을 받고 군복무를 하다가 휴전이 되면서 많은 군인들이 제대하여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충북 어느 시골 농촌 동리의 한 집에도 아들이 군대 나가 죽을 것만 같아 항시 걱정을 하였는데, 다행이 아무 부상도 없이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왔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우선 나이가 30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갔으니 온 사방으로 수소문하여 아들을 장가들여 며느리를 보게 되었지요. 사돈집 가문 좋고, 인물 잘생기고, 맘씨 착하고, 집안일 막히는 것 없이 잘하여 아무 불만이 없었으나, 시집온 지 얼마 안되어 뒷목에 큰 종기가 하나 생겨서 나을 만하면 또 옆에 생기고, 이제는 다 낫는가하면 또 옆에 생기고, 좀체 낫지 않아서 시어머니는 매우 걱정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장에 가서 페니실린 주사약을 한 병 사왔습니다. 그때만 하여도 전쟁직후라 병원이 없었고 또 있어서 비싸고 돈이 없어서 병원치료는 받기 힘든 때라 페니실린 주사약을 약방에서 사다가 주면서 “저 밑에 살고 있는 구장이 군대에서 의무대 근무를 하여서 주사도 잘 놓고 별도 잘 고친다고 하니 가서 주사 좀 놔달라고 하여라.”하고 시켰습니다.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색시가 주사약을 받아들고 구장님 집을 찾아가니, 구장 부인이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길래, 찾아온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부인은 흔쾌히 승낙하여 방에 있는 남편에게 주사 좀 놔주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새색시는 방에 들어와 앉았는데 구장이 주사 놓을 준비를 하고선 저쪽으로 돌아앉으며 하는 말이 “궁둥이를 까대고 앉으시오.”하는 겁니다. 새댁은 마지못하여 궁둥이를 까고 돌려댔습니다. 그냥 놓으면 아프더라도 참을 만하고 좋겠는데 젊은 새댁의 궁둥이를 구장이 툭툭 두드리니 이런 창피가 어디 있겠습니까. 너무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다 그만 나오지 말야야 할 그것이 주책없이 저도 모르게 ‘뽀옹-’하고 나오고 만 것입니다. 이래저래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차에 실례까지 하고 말았으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새댁이 하도 민망해서 어쩔 줄 몰라하니 구장이 이런 난처한 입장을 좀 면해 주고자 분위기를 바꿔 새색시의 맘을 위로해 줘야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구장은 종기가 언제부터 생긴 건지 물어보고, 몇달 되었다고 새댁이 대답을 하면 그것이 원래 잘 안 낫는 병인데 이제 주사를 맞았으니 곧 괜찮을 거라고 이야기를 다른 곳으로 돌려서 난처한 입장을 위로해 주려고 한 것이, 그만 방구에 정신이 팔려,‘그 종기가 언제부터 생긴 종기 입니까?’한다는 것이 “그 방구가 언제부터 생긴 방구입니까?”하고 묻고 말았습니다. 새댁은 그만 얼굴을 손바닥으로 감싸쥐고 쏜살같이 도망을 치고 말았지요. 자신의 말에 깜짝 놀란 구장은 ‘아차...’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어었지요.
실수를 깨닫고 민망해서 얼굴이 벌게서 앉았는데, 부엌에서 구장부인이 달음질치는 새댁을 보고 심상치가 않았습니다. 주사를 맞았으면 부엌에 와서 자기한테도 인사하고 갈 것인데 주사맞고 저렇게 꽁지가 빠지게 도망가는 것을 보니 암만해도 남편이 젊은 새댁이니 단둘이 방에서 무슨 엉큼한 짓을 한 것이라 여겼지요. 남자들은 군대 갔다오면 무서운 늑대로 변한다더니 우리 남편이, 동리 구장이라는 책임있는 사람이 자기 동리에 부모형제 같은 사람이고 날만 새면이 얼굴을 마주대고 살아야 할 사람에게 그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에 화가 잔뜩 나서 “여보, 당신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요?”하고 소리쳤습니다. 구장은 당황하여 얼굴이 빨개지며 "뭘? 아무짓도 안했어." "당신이 엉큼한 짓거리해서 저 새댁이 저렇게 얼굴을 감싸쥐고 도망"는 거 아니냔 말이에요? 바른대로 말해요." 저는 금시 덤벼들 것 같은 기세로 남편을 노려보았습니다. 남편은 하는 수 없이 여차여차해서 새댁이 부끄러운 생각을 좀 덜나게 하려고 했다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구장 부인도 그 말을 듣고 너무 우스워서 허리를 움켜쥐고 요절복통을 하고 웃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한동리 사는 새댁의 체면과 위신이 손상되는 이야기니 절대로 입밖에 내지 말고 비밀을 지키자고 두 내외가 다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세상의 비밀을 지킨다는 것이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혼자 알고 숨기기에는 너무 아까운 이야기고, 숨기고 비밀을 지키자니 점점 더 우스워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부모님이나 동리 친구들이 "미친나? 왜 혼자 싱글벙글 웃고 있냐? 무슨 일인지 나도 좀 알자."며 묻고 대드는 바람에 "그럼 이것은 비밀이니 너 혼자만 알고 있어."하며 신신당부에 다짐까지 받고 이야기를 하였는데, 워낙 우스운 일이라 삽시간에 온 동리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소문은 어른들만 알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구쟁이 어린아이들까지도 알게 되어 이 새댁이 동리에만 나오면 어린 놈들이 뒤를 따라다니면서 "그 방구가 언제부터 생긴 방구입니까?""그 방구가 언제부터 생긴 방구입니까?"하고 줄줄이 따라다녀서 대문 밖엔 못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새댁도 백발이 성성하고 며느리도 보고 해서, 손자 손녀 업고 나와 다녀도 누구나 까마득하니 잊어버리고 말하는 사람없이 맘놓고 안심하고 나와 다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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