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먹는 게 퇴직금이구만유
지금으로부터 약 십년전. 제 부모님께서는 아현동에서 중국집을 하고 계셨습니다. 자장면 집은 신속배달이 생명이고 철가방이 마스코트이기에 저희도 '철가방'을 우대했습니다. 많은 철가방이 거쳐갔지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날으는 철가방', '환상의 철가방', '전천후 철가방', '오토매틱 철가방', 그리고 우리집 '홍보석'의 최장수 철가방이자 마지막 철가방인 대경이 형을 떠올리며 자칭 '영업부장' 타칭 '터미네이터 철가방'인 대경이 형에 대해 몇 자 쓸까 합니다. 형의 고향은 어머니의 고향인 충남 당진이었습니다. 먼 친척뻘이라 했는데 촌수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사돈의 육촌 정도는 되었겠지요. 초등학교 6년을 하루는 결서, 하루는 조퇴, 다음날은 가정학습, 그 다음날은 야외학습하며 3년도 채 안 다니고 졸업을 한 나름대로 '수재'였습니다. 어쨌든 형은 첫날부터 수상했습니다. 가게로 막 들어선 형을 본 순간 전 '민속씨름'선수인 줄 알았습니다. 형은 신장 185센티미터에 90킬로그램이 넘는 무게를 자랑하는 나이트클럽 어깨를 연상케 했습니다. 우선 요기부터 시켰습니다. 어머니 말처럼 사람 구하기 힘든 때에 그야말로 극비리에 스카우트 해온(물론 농사를 짓고 있었지만) 귀한분 이었으니까요. 형은 슬쩍 본 주방장 아저씨는 볶음밥 곱빼기, 왕특자장면, 군만두 3인분을 내놓았습니다.
"쩝쩝, 후루룩."
정말 잘 먹더군요. 열심히 먹고 있는 형에게 주방장 아저씨가
"어때 자장면 맛이 괜찮으냐?"
하며 은근히 자기자랑 비슷한 질문을 하더군요. 한입 가득 자장면을 씹고 있던 형은 알사탕만한 큰 눈을 껌벅이며 무언가를 생각하더군요. 그리고는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글씨유, 모르겠구만유. 자장면이 자장면 맛이지, 괜찮은 건 또 뭐래유?"
여하튼 다음날부터 형은 배달을 시작했습니다. 카운터에서 전화받으랴 계산하랴 바쁜 어머니에게 형은 철가방을 들고 그 느린 말투로
"아줌니이-, 지 수진부동산 댕겨 오께유." 하며 배달을 나가는 겁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아줌니이-, 지 수진부동산 댕겨 왔구만유." 하는 겁니다. 처음 몇 번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계속 그러자 어머니가 "대경아, 이제 어디 간다고 또 왔다고 그런 말 안해도 돼. 그냥 갔다와." 하자 형은 큰 눈을 껌벅이며 무언가를 생각하더군요. 그리고 입을 열었습니다.
"글씨유, 뭔 말인지 모르겠그만유. 사람이 나가면 나간다, 들어오면 들어온다, 말을 해야지, 어찌 그런대유, 휙 나가고 휙 들어오는 그런 경우가 어딨대유. 진 그리는 못하는구만유."
어쨌든 너무 순진하고 때묻지 않은 형은 기운이 넘쳐 일도 잘했습니다. 완행열차 추풍령고개 넘어가듯 말은 느렸지만, 몸은 불곰이었지만, 동작은 물찬 제비였습니다. 가랑이 사이로 비파 소리가 나도록 부지런히 움직였고, 철가방을 들고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휙- 하는 바람소리가 날 정도였습니다. 기운좋게 일 잘하니 먹는 것도 대단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돼지고기 두 근 정도는 그야말로 마파람에 게눈 감추는 식으로 먹었습니다. 하루는 점심으로 볶은밥 4인분을 먹고 있던 형에게 "대경아, 그렇게 많이 먹고도 소화가 되니?" 하며 어머니가 묻자 형는 숟가락을 내려 놓더군요. 그리고 또 큰 눈을 껌벅거리며 무언가 생각하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아줌니이-, 물어볼 게 있구만유."
"뭔데."
"저기유, 여기 퇴직금 주남유?"
"애는 중국집에 퇴직금이 어딨어."
어머니가 대답하자 형은 물컵에 물을 따라 벌컥벌컥 마시더니 물컵을 턱 소리나게 내려놓고는
"거봐유, 안 주는 거 맞쥬. 내 다 알쥬."
하고는 목을 곧게 세우고 눈에 힘을 주며 비장한 목소리로
"나유, 서울 올라올 때 우리 엄니가 그랬슈, 즉 먹는 게 퇴직금이다 이 말이쥬. 어때요, 내 말이 맞쥬?"
하고는 남은 볶음밥을 마저 먹더군요. 그 뒤로 어머니는 대경이 형이 뭘 먹든 얼마나 먹든 신경 안 쓰셨지요.
어느 날 텔레비젼에서 권투 중계를 하더군요. 주방 식구들은 서로 내기를 걸었지요. 주방장 보조인 김씨 아저씨가 야 대경아, 흰 빤스 입은 애가 이길 것 같냐? 파란 빤스 입은 애가 이길 것 같냐? 며 대경이 형에게 묻더군요. 전 형이 이번에는 또 뭐라고 대답할까 궁금했습니다. 사과를 우적우적 씹어 먹고 있던 형 왈,
"글씨유, 몰라유. 내가 그걸 어찌 안대유."
김씨 아저씨가 재차
"임마 그래도 예상은 할 수 있잖아. 예측도 못하냐?"
하자 형은 바쁘게 씹던 사과를 꿀꺽 삼키더니 큰 눈을 껌벅거리며 또 뭔가를 깊이 생각하더군요. 이윽고,
"글씨유, 지가 볼 때는유 많이 맞은 놈은 아플 거고, 때린 놈은 지치겠쥬."
하는 겁니다. 어는 월말 수금문제로 형은 또 한번 웃기더군요.
"수금 왜 못했니?" 라는 어머니 물음에 형은 말하더군요.
"글씨유, 안 주네유."
"달라고 했어?"
"했는디, 돈이 없대유."
"그럼 언제까지 줄 수 있는지 물어봐야지."
"글씨유, 곧 주겠쥬."
"참 답답해라."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자 형은 눈을 껌벅거리며 또 뭔가를 생각하더군요.
"그렇지유. 답답하쥬. 지는 환장하겠슈..."
사건도 많았지요.
어느 겨울날 배달을 나간 형이 빙판에 미끄러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깨진 그릇과 짬뽕국물이 질질 흐르는 철가방을 들고 절뚝거리는 형에게 제가 물었습니다.
"형 미끄러졌구나. 많이 다쳤어?"
"아녀, 내가 미끄러진 게 아녀. 오토바이가 미끄러졌다니께..."
"조심하지 그랬어."
"나야 조심하지. 근디 오토바이는 조심 안혔어. 그러니 오토바이가 미끄러졌지. 나야 잘못 없어."
형은 말하면서 행주로 철가방을 닦더군요. 그러다가 형도 선을 볼 나이가 되어서 어머니가 미장원 아가씨를 소개시켜주었지요. 그런데 나간지 한시간도 채 안되어 형이 들어오더군요. 전 왜 이렇게 일찍 들어왔냐고 하며 형의 안색을 살폈습니다. 한참을 끙끙 앓던 형이 말하더군요.
"아, 글씨. 다방에서 코피 마시는데, 코피 좋아하냐구 가시나가 묻잖여. 그래서'시키니까 마시지유.' 혔지. 그리그 오늘 어떻게 할 거냐구 묻잖여. 그래서 '나가봐야 알쥬.' 혔지 한참을 있다가 '점심은 어떻게 하죠?' 하길래 '배고프믄 묵쥬.' 혔지. 그러니까 이 가시나가 톡 쏘잖여, '오늘 여기 왜 나왔어요?' 하고 말여. 그래서 '선 보러 가라 해서 왔지유.' 혔지 그러더니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어떻게 살거냐고 묻길래 '결혼혀봐야 알쥬.' 그랬지. 그러니까 코맹맹이 소리로 '실례했어요.' 하고 나가잖여. 햐튼 서울 아들은 싸가지가 없어."
휴... 저는 그냥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요. 시간은 잘도 흘러 저희 중국집도 남에게 처분했지요. 형은 그간 모은 돈을 갖고 당진으로 내려갔습니다. 논밭도 많이 장만하고 소, 돼지, 개, 닭도 굉장히 많다고 들었습니다. 재작년 가을에는 결혼도 했고, 올초에 아들을 낳았다고 집으로 전화를 했더군요. 어머니가 애는 이쁘고 건강하냐고 묻자, 형은 이러더랍니다.
"글씨유, 잘 몰라유. 지 눈엔 이쁜데, 아줌니가 봐야 이쁜지 안 이쁜지 알지, 그걸 어떻게 아남유. 그럼 들어가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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