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사위, 자는가?
제목이 좀 야하지요? 맞습니다. 좀 야합니다. 그렇지만 엄청나게 많은 '지금은 라디오 시대' 애청자를 위해 그날 밤 일들을 몽땅 적나라하게 밝히겠습니다. 저는 선을 삼십 번도 넘게 본 끝에 30세 되던 해에 24세의 미모의 여성과 결혼을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일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결혼식이 끝나면 신혼여행을 떠나고 신혼여행 갔다 온 뒤에 처가에 다녀오는 게 순서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여러가지 사정상 결혼식 끝난 후 처가에서 1박하고 신혼여행지로 가기로 일정을 잡게 되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우리는 일정표대로 전북 김제의 처가로 갔습니다. 새 신랑 왔다고 모여든 마을 어른들 모시고 막걸리 대접을 끝내고 나서 잠자리에 들 궁리를 하는데 하나 둘씩 모여드는 건장한 동네 남자들... 저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촌에서 신랑을 매단다고 하지 않습니까? 겁이 나더라구요. 그러나 신체 건강한 대한민구 남성으로 그 힘든 군사훈련 다 거친 사나이가 무엇이 두려우랴! 걱정하지 말자. 마음을 다스리며 점잖게 술대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흐르자 저는 안도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장모님께서 어찌나 성화를 대시는지 마을 남자들과 술상을 마주하고 대접하는 방으로 3분마다 한 번씩 들어오셔서 빨리 가라고 성화를 대니 한 잔씩 하시더니 모두 일어서더군요. '불감천이언정 고소원이라'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우리 장모님 최고, 부라보, 따봉, 빅토리, 원더풀'을 속으로 외치며 겉으로는 아쉬운 척 배웅을 했습니다. 모든 손님들이 다 가시고 이제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 시나브로 다가오고 이었습니다. 30세의 신체 건강한 총각이 결혼 첫날밤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겠습니까? 서둘러 장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어서가서 푹 쉬라는 말씀을 뒤로 한 채 원앙금침이 깔려 있는 건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용의 주도하신 장모님께서 작은 주안상에 간단한 안주와 술병을 준비해 놓으셨더라구요. 대부분 관광지 고급 호텔에서 첫날밤을 보내는데 시골의 낡은 처가에서 첫날밤을 보낸다는 게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 마음이 확 바뀌더라구요. 싫다는 신부에게 술 한잔 먹여 놓고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대로 불을 껐습니다. 예날 우리의 부모님께서 왜 자식을 적게는 대여섯 명, 많게는 십여명씩 낳았는지 말입니다. 불을 끄자창호지 문을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달빛 조명은 옆에 있는 신부를 황홀한 미모의 선녀로 보여지게 하더군요. 이런 상황에서 이찌 자녀가 많이 안 생기겠습니까? 저는 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급하다 한들 신혼여행 첫날밤을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초전박살 구호를 외치며 파죽지세로 몰아붙일 수는 없는 법. 저는 정공법을 택하기로 하고 급한 마음을 억누르며 탐색전을 펼쳤습니다. 요리조리 살펴보고 요모조모 따져보는 철저한 탐색전을 마무리하고 드디어 공격개시하려는 찰나 느닷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시는 장모님. '아! 이를 어쩌나, 어찌한단 말인가? OH MY GOD! 불쌍한 우리 한쌍을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주시든지,펑 하고 사라지게 해주실 수는 없는지요? 정말 눈앞이 캄캄하고,컴컴한 밤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걸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이미 엎지러진 물이요, 깨진 쪽박인 것을... 선천성 두뇌 명성증을 앓고 있는 저는 생각했습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고,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제 두뇌에서는 현역군 시절 각개전투 훈련때 받은 교육내용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즉, 각개전투시 신속한 동작으로 최대한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은폐와 엄폐를 하라! 저는 즉시 행동개시,잽싼 동작으로 베개 뒤에 숨고 이불을 뒤집어썼습니다. 그런데 뒤이어 들려오는 장모님의 말씀인즉, 출출할 것 같아 고구마를 삶아 왔는데 먹고 자라는 겁니다. 세상에! 신혼 첫날밤, 이 귀중하고 엄숙하고 중차대한 시간에 고구마 먹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고구마 들여 놓고 문 닫고 나가실 줄 알았는데,새 사위 자느냐고 부르시는 겁니다. 전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대답을 하자니 원초적 상태라서 일어날 수도 없고,그렇다고 어른 앞에서 발딱 누운 채로 목만 내놓고 있을 수고 없고,그래서 그냥 자는 척하고 대답을 안했습니다. 그런데 장모님 눈도 밝으시지 이불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덮어 쓴 우리를 보시고는 군불을 충분히 땠는데 추운 모양이라며 문을 열어 놓고 나가시는 겁니다. 방이 추웠냐구요? 천만의 말씀이에요. 냉방이라 할지라도 우리 두사람 열을 바짝 받아서 더울 판인데 방바닥이 완전히 고기 굽는 프라이팬같이 뜨거웠거든요. 그러나 장모님 나가시는 게 반가워 아무 대꾸를 안했습니다. 저희는 장모님이 나간신 후 이불을 걷어내고 한참을 심호흡을 해야 했습니다. 뜨거운 한증막에 갔다온 것 같았거든요.
하여튼 잠시후 우리는 또 다시 인플레이 상태로 돌입했습니다. 밀 밀리며,빼았고 빼앗기는 대접전 끝에 또 한번의 노마크 찬스를 맞게 되었습니다. 건국이래 최초로 월드컵 우승이 눈앞에 다가온 환희와 기쁨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벌컥 열려지는 문. '오호! 통제라.분하고 원통함이여.어찌 하오리까!' 혼비백산 이불속으로 또 다시 숨었습니다. 삶은 고구마 머자면 목메일까봐 식혜 한 대접을 갖고 오신 겁니다. 시원하니 먹고 자라며 이불 뒤집어쓴 우리를 향해 한마디 하시고는 나가시면서 난방 잘된 서울 아파트에 살아 추위를 되게 탄다며 혀를 끌끌 차시는 겁니다. 저는 허탈한 심정으로 문을 바라보다가 순간 아! 하고 무릎을 탁쳤습니다. 낡은 문틀에 녹슨 대못이 한 개 박혀 있었습니다. 저는 얼른 일어나서 벽장안에 있던 나일론 끈을 가지고 문에 박혀 있는 무쇠고리에 묶고서 문틀에 박힌 커다란 대못에 칭칭 감았습니다. 문을 잠그고 나니 안심이 되더군요,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고지를 향해 전진에 전진을 거듭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한 등반대원들이 고지 정상에 깃발을 꽂지 않습니까? 저도 정상에 깃발을 꽂겠다는 일념으로 목숨걸고 최악의 조건과 싸우며 정상에 도착,깃발을 꽂는 순간 그 감격과 감동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드디어 그 감격과 감동을 맛보려는데 또 다시 왈칵 열려진 문,이번엔 군불때면서 옥수수를 구웠는데 먹으라는 겁니다. 정말 맥빠지더군요.그런데 나가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군불도 땠고 했으니 가서 주무신다니,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어디있겠습니까? 잠시후 장모님 방에 불이 꺼지더군요. 분명히 노끈으로 문고리를 동여맸는데 어찌된 건지 일어나 자세히 보니 끈을 감아 놓은 대못이 빠져 있더군요. 못이 박혀 있던 자리를 보니 구멍이 헐렁해져서 손으로 끼워놓은 건데 거기다 묶었으니 저항도 없이 열릴 수밖에... 이래서 신혼여행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먼곳으로 가는가 봅니다.
이제 입안은 말라 비틀어지고 혓바늘이 돋고 눈은 쑥 들어가고 정신은 몽롱했지만 첫날밤인데 어찌 그냥 보낼 수 있겠습니까? 들여 놓으신 식혜를 벌컥벌컥 다 들이켜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무단 침입으로 여러번 중단되었던 일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참 끈질긴 성격이지요? 그런데 제가 막 열받기 시작했는데 신부가 자꾸 뜨겁다고 하는 겁니다. 저는 이야기했죠! '원래 첫날밤은 다 그런 거다. 조금만 참아라.어른된다는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우리 것이다.' 저는 성경말씀까지 갖다대며 노력하고 있는데,신부의 태도가 이상했습니다. 벌떡 일어나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겁니다. 냄새뿐이 아니고 눈이 따갑고 목이 메케해지는 겁니다. 얼른 불을 켜고 이불을 들춰보니 방이 너무 뜨거워 이불이 누렇게 그을렸습니다. 새로 깐 노란색 비닐장판이 새까맣게 오그라들면서 타들어가고 새 이불도 연기가 풀풀 날 정도였으니까요. 얼른 밖으로 내놓고 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는데 동쪽하늘에 서서히 먼동이 트기 시작하는 겁니다. 아직 아무일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신랑이 술에 곤드레만드레 되어 그냥 넘기는 부부도 있다지만 저는 맨정신이었거든요.아쉬운 대로 그을린 요는 버려두고 방으로 가서 보니 아랬목은 금방 폭발한 활화산처럼 뜨거워 접근이 불가능하여 윗목에 아불을 깔았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아랬목은 불덩어리인데 윗목은 그야말로 시베리아 얼음장보다 더 차더라구요. 여하튼 중단되었던 작업을 계속하려고 하는데 이번에 신부가 춥다고 오들오들 떠는 겁니다. 사실 찬방에서 올라오는 냉기는 견디기 어렵더라구요. 뼈마디 깊속한 속까지 파고드는데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우리는 너무 추워 옷을 주워입고, 추우면 아랫목에 더우면 위목에 옮겨다니기를 여러번,아랫목이 고비를 넘기고 알맞게 식을 무렵 닭우는 소리가 새벽을 알렸습니다. 밖에 내놓았던 그을렸던 요를 갖다 아랫목에 깔고 중단되었던 일을 재개하려눈데 신부가 병든 닭처럼 폭 고꾸라지더니 코까지 골면서 곯아떨어져 자는 겁니다. '이런 세상에... 이제 어쩔 수 없구나.' 포기를 하고 한숨 자려고 했지만 몸은 피곤해도 머리는 점점 맑아지고 어떤 엄청난 에너지가 끓어올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신부가 야속했습니다. 지금 이 시간까지 파란만장한 상황을 거쳐 천신만고 끝에 장모님 주무시고 방바닥고 식었는데 잠을 자다니,이런 상황에서 잠을 잘 수 있는 여자의 신체구조와 정신상태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신부를 깨워 중단했던 작업을 계속하려는데,문이 살짝 열리며 장모님이 들어오시는 겁니다. '밤새 즐겁게 잘 잤는가? 사위 눈이 벌겋게 충혈된걸 보니 내 기분이 좋구만, 암닭이 금방 낳은 알이라 따뜻께로 어서 먹소.' 참말로 끈질긴 장모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장모님은 제게 계란을 주시고는 신랑보다 늦잠자는 색시가 어디 있냐며 부득부득 깨워 밖으로 데려가시는 면밀함까지 보이셨죠.물론 전 그 첫날밤을 아무일도 없이 잠만 설쳤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약이 오르는 첫날밤 사연. 재미있었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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