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비밀이야 - 윤영옥(여. 경기도 용인시 남동)
두 분은 고3의 비애를 알고 계십니까? 새벽 5시 30분이면 새벽별 한 번 바라볼 새 없이 버스를 타야 하고 열아홉 소녀 엉덩이보다 작은 의자에 의지해서 밤 11시까지 앉아 있어야 하는 고충을요. 졸면서 차를 타고 집에 오면 새벽 0시 30분, 씻고 눈 한 번 깜짝거리면 다시 새벽 4시, 이런 고3의 슬픔을 알고 계십니까. 아! 옛날에 춘향이는 2X8=16세에 이몽룡과 뜨거운 사랑을 했다던데, 춘향이보다 언니인 저는 근처에 있는 남학생 얼굴 쳐다볼 새도 없습니다. 정말 대학이라는 곳은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인가 봅니다. 거기다 저희 사부님들은 칠판에 온갖 아리송한 글씨를 써놓으시곤 이렇게 말하시는 겁니다.
"이거 모르면 죽어야 합니다."
"여자는 딱 두 가지입니다. 공부가 뛰어나거나, 얼굴이 뛰어나거나..."
그리고선 이내 저희들을 둘러보시고 이렇게 말하시죠.
"자, 공부합시다."
또 고3의 슬픔은 학교의 온갖 행사에서 열외된다는 것입니다. 체육대회, 학교축제, 방학, 일요일까지 반납하고 학교에서 가장 한적한 4, 5층으로 유배된다는 것입니다. 가끔씩 창문 밑으로 보이는 1, 2학년 후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련한 그 시절을 떠올리기도 한답니다. 그러나 그 애들에게도 다가올 고3을 생각하며 홀로 중얼거려도 봅니다.
"너희도 멀지 않았어."
하지만 인생은, '슬픔과 기쁨이 함께 한다'라는 제 말처럼 슬픔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기쁨도 있답니다. 고3이 되기 전에는 집에 들어가기가 바쁘게 엄마가 말하셨습니다.
"씻으면서 양말 스타킹 빨아라."
그러나 고3이 되면서부터는 들어가기가 바쁘게 엄마는 말하십니다.
"피곤하니까 어여 씻고 자."
그리고 성적표가 나와도 별보고 나왔다 별보고 들어가니까 잔소리 들을 새도 없어 좋은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수업시간에 가끔씩 졸아도 측은한 눈길로 쳐다보시는 선생님께선 이렇게 말해주시기도 한답니다.
"침이나 닦고 주무세요."
그리고 학교측에서는 고3 전용 화장실까지 4층에 만들어 주셨다 이겁니다. 뭐, 화장실 갈 시간도 아껴서 공부해라 이거겠지만요. 화장실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하는 이야기인데요. 저희 고3 전용 화장실을 저희 수업 중에 선생님들께서 이용하신다는 소문이 있답니다. 선생님 화장실은 1층에 있는데 급해서 그러신지 아니면 선생님들께서도 촌음을 아껴서 수업준비를 하시려고 그러신지는 몰라도 저희들 3학년 화장실을 이용하신다 이겁니다. 소문은, 1학년 때 음악 특활시간에 음악 선생님께 찾아와 "여기가 딴따라 부서인가요?"하고 물었다가 사정없이 귀싸대기를 얻어맞은 일명 엉뚱이란 친구에게서 나왔습니다. 참, 엉뚱이는(체면을 생각해서 이름을 밝힐 수는 없음) 3학년에 올라와서도 지각을 자주 해서 항상 헐레벌떡 뛰어오는 아이인데, 한번은 교복 코트만 입고 치마는 입고 오지 않아서 유명해진 아이랍니다. 하루는 엉뚱이가 점심 먹은 것이 잘못되었는지 5교시 수업 중에 화장실로 뛰었답니다. 화장실에서 뱃속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들을 힘을 줘서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데 화장실에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조심스런 목소리로 "누구 있어요?"하고 사전답사의 목소리가 들리더랍니다. 우리의 엉뚱이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드롱이(아랑드롱을 닮아서)'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고는 숨을 죽였답니다. 급한 일도 참구요. 아무 소리가 없자 드롱이 선생님은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와 볼일을 보시는데 정말 들어주기 민망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랍니다. 부스럭거리면서 쟈크 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뒤이어 '뿌다다닥' 갑자기 오토바이 달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남자도 애를 낳는구나!' 실제 산고의 고통소리가 비명처럼 들리더랍니다. 이에, 우리의 친구 엉뚱이는 제자된 도리로 '더 이상은 선생님의 치부를 알아서는 안된다,'는 결심을 하고 열심히 신음을 하고 계시는 옆칸의 드롱리 선생님께 '선생님 저 여기 있어요.' 하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답니다. 그러자 갑자기 신음이 뚝 멈추고 한동안 안정적이 찾아오더니 부스럭거리면서 쟈크 올리는 소리가 들리더랍니다. 엉뚱이는 선생님 보기가 민망해서 화장실 문을 살짝 열고 밖을 바라보면서 선생님이 나가시기만 기다렸답니다. 그러자 조금 있다가 옆칸에서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신 드롱리 선생님은 주위를 두리번거리시며 세면대 앞으로 가시더래요. 그리고 마침 그곳에서 손을 씻고 있는 같은 반 친구 소실이에게 다가서서 멋쩍게 웃으시더니 한 손을 입에 대고 이렇게 조용히 말씀하셨답니다.
'비밀이야.'
영문을 모르던 소실이는 엉뚱이에게 '비밀이야'의 비밀을 듣고는 학교 내의 소문으로 퍼졌습니다. 드롱리 선생님을 흠모하던 친구들은 경악을 하면서 믿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우리와 같이 밀어내기 같은 일을 하실 분이 아니다.' 그러나 확실한 증인이 있는데 어쩌겠습니까. 대학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우리는 수인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런 제한된 공간에서도 비밀은 생기고 있답니다. 제 친구들은요 대학이라는 곳은 '큰 학'이라고도 하고, '공자가 지은 사서의 하나'라고도 하지만 대학은 '대단히 학수고대 하던 곳'이기도 하지요. 또 고3인 제가 오후 11까지 학교에 남아 있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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