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에게 가장 잊을 수 없는 선물을 받은,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가 언제였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가 첫영성체를 하던 해의 크리스마스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지금도 어쩌다 서울 혜화동 로터리를 지나게 되면 내게 아름다운 추억을 심어 준 혜화동성당을 정다운 눈길로 바라보곤 합니다.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기억은 생생하고, 아홉살 먹은 어린 소녀가 처음으로 예수님을 받아 모시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었던 12월의 그날, 유난히 날씨는 추웠지만 마음은 따뜻하게 느껴졌던 그 성탄절을 잊지 못합니다. 한 장의 빛 바랜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어린 모습의 나와 옆의 동무들이 문득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늘 신비하게 보였던 하얀 고깔의 수녀님과 그분의 하얀 미소, 우리가 입었던 하얀 옷과 제대 위의 하얀 초, 신자들이 쓴 하얀 미사보, 성당에서 어린이들에게 끓여 준 하얀 떡국 등등 모든 것이 다 하얗게 눈부신 기억으로 살아 있습니다. 그날 가장 큰 사랑의 선물이었던 예수님의 몸(밀떡) 또한 거룩하고 순결한 흰 기쁨으로 나를 압도하였습니다. 첫영성체 때의 기도는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수녀님의 말씀에 난 구체적인 내용은 잊었으나 `앞으로 예수님을 닮은 가장 착하고 올곧은 삶을 살겠습니다`는 결심을 봉헌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수녀원에서 해마다 성탄을 지내면서 난 그토록 아름답고 순결했던 첫영성체 때의 첫 결심을 다시 기억하며 행복해지곤 합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노래를 듣거나 부를 때면 눈이 오지 않았어도 눈나라에서 있는 것처럼 하얗게 황홀했던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며 훗날 주님이 불러 주신 사랑과 믿음과 희망의 하얀 길, 좁은 길로 들어서길 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는 길이 힘겹게 느껴질 때도 그분이 함께 계심을 믿기에 마음 든든한 나는 지금껏 많은 성탄선물을 받았지만 첫영성체의 선물만큼 아름답고 큰 선물은 다시 없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