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공부하던 수업시간마다 담당 교수님이 하시던 말씀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비극의 주인공들이 모든 것을 너무 늦게야 깨닫게 된 비극적 결함 (Tragic fault)과 상황이 우릴 슬프게 한다"는. 우리의 삶에도 종종 우리 자신의 결함과 실수로 빚어지는 `회복하기엔 너무 늦은 상황`들이 벌어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충격을 준 서울 성수대교의 붕괴도, 대구 가스폭발사고도 일을 맡은 이들이 때를 놓치지 않고 최선의 성실과 책임을 다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인 것입니다. 이렇게 외적으로 크게 드러나는 사건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종종 우리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이들을 좀더 이해하고 용서하는 일을 끝까지 미루다가 그들이 병들어 저 세상으로 떠난 후에야 너무 늦었다고 가슴 치며 후회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합니다.
`수녀님, 우리의 삶은 왜 이리 바쁘지요? 하루, 한 해가 너무 빨리 가버려요. 수녀님이 서울에 오실 때마다 만난다 해도 그게 앞으로 몇 번이나 될까 싶어요` `행여나 하고 수녀님의 답을 기다리다가 지치고 말았습니다...` 라는 친지들이 보내 온 이런 글들을 읽을 때마다 나는 늘 미루어 둔 만남과 해야 할 숙제가 많음을 절감하며 초조해지기까지 합니다. 아우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때그때 해결하지 못하고 미루어 둔 일들이 널려 있음을 보는 것은 우울한 일입니다. 제때에 이행하지 못한 이웃과의 약속들을 기억해 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며칠 전 나는 아직 젊은 나이에 갑자기 암 선고를 받고 투병을 시작한 어느 신부님을 방문했는데 적절한 위로의 말을 찾을 수 없었고, 작은 꽃병에 담아 들고 간 은방울꽃 몇 송이를 내미는게 고작이었습니다. 꽃향기가 좋다는 인사를 잊지 않던 그 신부님과 헤어질 때 나는 `이분이 병들기 전에 꽃을 들고 찾아왔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어두웠습니다. "진작 찾아뵈려고 했습니다만...""진작 연락을 드리려고 했습니다만..." 하고 핑계를 대듯이 우리는 가끔 하느님 앞에서도`이 일이 끝나면 당신을 찾으려고 했습니다만...` 하는 식으로 염치없는 고백을 할 때도 많은 듯합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늘 바쁜 것을 핑계로 정작 중요하고 의미있는 만남의 순간들을 놓쳐 버리거나 꼭 기억해야 할 아름다운 순간들을 잃어버리고, 건성으로 지나칠 때도 많다고 생각됩니다. 때로는 나중에 후회할 줄을 뻔히 알면서도 `당장은 힘들지만 유익한` 지혜로운 선택보다는 `우선 쉽고 편하지만 무익한` 어리석은 선택을 해 버릴 때도 있습니다.
남들이 우두커니 몽상에 빠져 있거나 방종과 쾌락에 탐닉되어 있을 때도 한눈을 팔지 않고, 삶의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은 슬기롭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가끔 높은 담 너머 갇힌 공간에 사는 수인들로부터 단 한순간이라도 놓치지 않고 더 많이 기도하려는 열망과 노력이 가득한 글들을 받을 때마다 내 적당주의의 삶이 부끄러워 얼굴을 붉힙니다. 항상 때를 놓치지 않는 지혜를 구하며 정현종 시인의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이라는 시를 읊어 봅니다.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건이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일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리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