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마음의 작은 표현들
며칠 전에 오랜만에 바닷가에 나갔다가 모래 속에 깊이 묻혀 있는 아주 작은 조가비들을 주워 왔고, 오늘은 솔숲길을 산책하다 깨끗한 모양의 솔방울과 도토리들을 주워 왔습니다. 나는 이것을 한동안 소식이 뜸했지만 마음으로 가까운 어린 시절의 벗에게 편지와 함께 보내려고 상자에 담아 두었습니다. 요즘처럼 좋은 물건들이 넘쳐나고, 돈만 주면 못 사는 것이 없을 만큼 풍요로워진 시대일수록 상점에서 흔히 살 수 있는 선물보다는 주는 이의 정성과 따스한 마음이 담긴 요란하지 않은 선물이 오히려 더 반갑고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아주 작은 메모쪽지 하나라도 때로는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음을 여러 차례 경험하게 됩니다.
여권과 비행기표마저 잃어버리고 상심해 있던 몇 년 전의 여행길에서 누군가 나뭇잎에 `굿 나잇`이라고 써서 내가 머무는 방에 놓아 주고, 박하사탕 한 개와 함께 놓고 간 격려의 말은 힘든 중에도 작은 위로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나는 특히 해외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친지들에게 고국을 느끼게 하는 그림옆서나 나뭇잎, 현재의 사회적 상황이 가장 잘 요약된 신문의 만화, 미담, 아름다운 시들을 오려 보내곤 하는데 긴 글을 못 쓴 채 보내더라도 다들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릅니다.
나의 서랍엔 지금도 친지들이 보내 준 각종 편지, 카드 엽서, 메모지들이 가득합니다. 축일이나 기념일, 어떤 강의 끝에 우리 자매들이 정성을 다해 한마디씩 짤막하게 이어서 쓴 글은 아름다운 모자이크나 조각보처럼 여겨져서 선뜻 버릴 수가 없습니다. 무선전화기와 호출기 사용자가 늘어나고, 편지도 컴퓨터로 찍어 모사전송으로 보내는 이들도 많아지는 요즘엔 친필편지 받아 보기도 그리 쉽지 않은 듯합니다. 나도 가끔은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할 때가 있지만 그럴 때라도 꼭 친필로 쓸 여백만은 남겨 두곤 합니다. 기계로 찍힌 글씨와 비록 악필일지라도 손으로 직접 쓴 글씨를 받아 볼 때의 느낌은 크게 다르기 때문이지요.
`친구야, 편지 한 번 안하는 무심함에다 세상에 없는 천하태평이라구? 하지만 내 편에선 늘 너를 짝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소식이 없어도, 안 봐도 넌 늘 내 가장 가까운 마음의 친구이다. 너무 유명(?)한게 흠이긴 하지만 친구야. 너를 늘 생각하고 사랑한다.`
며칠 전 열다섯 살 때의 글씨 그대로인 중학교 친구 혜숙의 쪽지를 오랜만에 받은 나는 그가 불쑥 전화로 얘기한 것보다 더 찡한 감동을 받고 행복했습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나는 벗과 친지들에게 건강한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지만 의미 있는 사랑과 기쁨의 표현을 부지런히 하고 사는 소박한 부자가 되자며 강조하곤 합니다. 생전엔 거의 발표되지 않고 있다가 사후에 출판된 에밀리 디킨슨의 1700여 편이나 되는 제목 없는 많은 시들은 그가 생일이나 기념일을 맞은 그의 가족 친지들에게 적어 보낸 카드나 편지글들을 정리한 것이라고 합니다.
새봄을 맞아 우리는 가족, 친지, 이웃에게 적어 보낼 좋은 생각과 좋은 글귀들을 많이 모아 둘 수 있는, 그래서 열기만하면 언제라도 작은 보물섬이 되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문집 한 권을 준비하면 어떨까요? 시. 의미있는 그림이나 만화, 격언, 감동적인 체험담 등을 열심히 모아서 꾸미다 보면 그 자체가 기쁨이 되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하고 싶어도 선뜻 쓸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엔 좋은 길잡이 노릇을 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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