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손님맞이
아침에 까치가 울면 "오늘은 반가운 손님이 오시려나 보지?"하며 빙긋 웃던 가족들의 모습은 늘 따뜻한 정과 그리움의 추억으로 떠오른다. 집에 손님이 온다는 날이면 어떤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공연히 마음이 들뜨고 즐거웠던 어린 시절. 가족들이 집 안을 평소보다 더 깨끗이 하고, 고운 옷을 입으며, 바른 인사법과 공손한 예절을 익히며 준비하는 그날이 내겐 늘 설레임 가득한 축제로 느껴진곤 했다. 그러나 우리집에 다니러 온 친척, 이웃 손님들이 잠시 머물다 작별의 인사를 하고 떠날 때쯤이면 나는 너무 아쉽고 허전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씁쓸히 서성이던 기억이 새롭다.
내가 유난히 까치가 많고 소나무가 많은 이곳 부산 광안리 산기슭의 성 베네딕도수녀원으로 `시집`와서 산 지도 벌써 30년이 되었다. 워낙 식구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수녀원엔 거의 하루도 손님이 없는 날이 없다. 손님은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귀한 선물임을 늘 강조하는 베네딕도 성인은 그의 규칙서에서 `찾아오는 모든 손님을 그리스도처럼 대하고` `손님이 오면 사랑의 봉사로써 마중 나가, 함께 기도하며 평화의 인사를 하라`고 강조한다. 우리 동산의 꽃과 나무들만큼이나 우리 손님들의 모습도 다양하다. 수녀가 되고 싶어 찾아오는 아가씨들, 수녀가 된 딸들을 만나러 오는 가족과 친지들. 여행길에 가벼운 마음으로 들렀다 가거나 강의를 해주러 오는 선생님들,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이 갖고 싶어 며칠 묵어 가는 성직자와 수도자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해서 달려오는 몸과 마음이 아프고 지친 사람들 등등. 특히 여러 날 묵어 가는 경우엔 시설이 불편하다고 불평할 수 있는 자그만 객실인데도 손님들은 대체로 고마워하며, 식탁에 올리는 반찬도 극히 단순 소박한 것이지만 밭에서 직접 가꾼 것이기에 더 귀하다며 맛있게 드는 모습을 보면 고맙고 기쁘다. 처음엔 서로 낯설고 서먹한 사이였던 손님들끼리도 이곳에 머무는 동안 서로 좋은 친구가 되어 연락을 주고받는 걸 보면 흐뭇한 마음이다.
손님은 우리의 창문이 되어 준다. 생활이 비교적 단순한 우리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잠시 잊고 있던 세상의 일들을 더 구체적으로 보고 느끼게 된다. 손님은 우리의 좋은 친구가 되어 준다. 우리의 좋은 점을 칭찬하고 격려해 주는 지지자나 힘든 때의 위로자가 되기도 하지만,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실수하는 부분이나 그 밖에 개선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선 예리한 지적도 서슴지 않는 고마운 충고자이다. 그러므로 손님은 우리가 게으르거나 방심하며 살지 않고 조금은 긴장하며 깨어 살도록 도와 주는 역할도 톡톡히 하는 셈이다.
손님맞이야말로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가 치르어야 할 아름다운 사람의 임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예를 갖추어 손님을 맞는 일이 때론 힘들고 번거롭게 여겨질 때도 있겠지만, 손님의 발걸음이 뜸한 집 안은 얼마나 쓸쓸하고 삭막할 것인가. 우정과 사랑이 피어나는 만남의 관계, 인정이 오가는 이웃과 이웃 사이엔 항상 손님이 있게 마련이다. 손님들의 평범한 인사말과 웃음, 유머, 재치, 그리고 그들의 기쁨, 슬픔, 괴로움, 갈등, 때로는 본의 아니게 우리를 성가시고 힘들게 하는 어떤 부담까지도 깊이 끌어안고 사랑하려는 자세로 우리는 오늘도 손님을 맞는다. 수녀원의 종소리를 따라 그들과 함께 기도하며 마음을 나누는 좋은 친구, 진실한 이웃이 되려고 한다.
나도 매일매일을 반가운 손님 대하듯이 환히 열린 마음과 시선으로 맞아들여야겠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귀한 손님을 맞듯이 단정하고도 다정하게 예를 갖추고 맞아들여야겠다. 그리하면 나의 삶은 따분하고 지루한 일상이 아니라 늘상 싱싱한 기쁨과 활력이 넘쳐나는 초록빛 축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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