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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가까이 사회와 격리된 높은 담장 안에서 자유를 그리며 라면 박스로 만든 서가에 <꽃삽>이란 나의 책도 꽂아 두고 본다는 대철의 글을 약간은 슬프게 새소리를 들으며 읽었다. `오늘은 한 주일 동안 쌓인 빨래는 하는 날. 우중충한 세면장에 덩그라니 혼자 앉아 양말을 빨고 있는데 창 밖에 웬 참새소리가 그리 요란한지. 재잘재잘재잘... 하도 시끄럽길래 일어나서 내다보았더니 잎이 파란 삼나무 한 그루 외엔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입니다. 아마도 놈들이 그 안에 숨어서 지절거리는 것이겠지요. 갑자기 한 놈이 후두둑하고 튀어나오더니 십여 마리가 뒤따라 나와 저쪽 취사장 쪽으로 날아가 버리데요. 재잘재잘하는 여운만 남겨 놓은 채. 문득 `살아갈수록 가볍고 싶은데 살아갈수록 내가 무겁구나` 하는 수녀님의 .새에 대한 단상이 떠올랐습니다. 그러고보니 저렇게 새처럼 가볍게 지절거려 본 일이 또 지절거림을 들어 본 일이 얼마나 되었던가요? 밖에서였더라면 남자답지 못하다고 핀잔이나 받았을 조잘거림이 왜 이리 그리운지요. 기분같아서는 누군가 옆에서 하루 종일 조잘거린다 해도 다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꽤 무거운 저는 오랜 격리생활 때문에 더욱 무거워진 것 같습니다. 아, 새처럼 공기처럼 가벼울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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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던 오늘 아침. 미사와 기도시간 뒤에도 종다리의 노래를 들었다. 빗속에 듣는 새소리는 더욱 잊을 수 없다. 참으로 밝고 명랑한 새들의 합창을 들을 때면 사소한 일로 우울하고 어두웠던 내 마음을 훌훌 털고 이내 명랑해져야겠다는 의무감마저 생겨 새들에게 고마운 인사를 보낸다. 홀로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부르는 새들의 노랫소리는 얼마나 멋지고 흥겨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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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내면에 깊숙히 숨겨져 있는 동심과 향수를 자극하는 그림들로 여겨져 그 아름다움에 끌려 장욱진 화백의 회고전에 다녀왔다는 석영이란 독자가 특별히 나를 생각해서 보내 준 화집을 나는 요즘 거의 매일 들여다보며 즐거워한다. `까치` `비상` `나무와 새` 등등 그의 그림에 많이도 등장하는 새들의 모습에서 난 시를 읽고 음악을 듣는다. 새가 그려진 엽서. 달력, 우표, 손수건 그리고 아름답고 멋진 그림들을 몇개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부자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