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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네시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유진 수사님이 어디서 구했는지 내가 좋아하는 시인 조이스 킬머(Joyce Kilmer)의 사망 이후 그를 추모하는 글이 실린 1918년 8월 19일자 <뉴욕 타임스>의 추모 기사 원본을 오려서 보내 주어 얼마나 기뻤는지! 거의 80년 된 기사이니 빛깔이 바래고 찢어져서 너덜너덜해졌지만 원본만이 줄 수 있는 독특한 느낌... 여러 시인들이 추모 시구를 모아 놓은 내용도 마음에 들어 몇 개 복사해서 피천득 선생님과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하는 벗들에게도 나누어 주어야겠다. `시는 나와 같은 바보가 짓지만 나무를 만드는 건 하느님뿐` 이라고 노래한 J. 킬머의 `나무들`이란 시가 어느 때보다도 생각나는 날이다. 사소한 일로 마음이 부대끼고 갈등 속에 있다가도 창 밖의 나무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뭐 그걸 가지고 그래?`하며 빙그레 웃는 것도 같고... 나무의 모습을 닮은 성자들의 모습도 떠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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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엔 웬 꿈을 그리도 많이 꾸었을까? 평소 생활을 반영해 주기도 하는 꿈의 세계. 그냥 무시해 버리기엔 너무 많은 의미가 있음을 나도 자주 체험하는 편이다. 피정중에도 지도자들이 가끔 꿈을 주제로 묵상시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깨고 나면 잊어버리는 꿈이 더 많지만 수도원에 오래 살면서 나의 꿈의 세계도 이젠 좀 정화되고 아름답게 성숙되고 있음을 문득 느끼며 스스로 고마워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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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 잘 있었나? 실은 간밤 내 꿈에 수녀 얼굴이 보여서 말이야. 혹시 무슨 근심거리가 있는가 하고 전화 걸었지." 아침에 걸려 온 구상 선생님의 전화. 몇 년 전. 내가 매스컴에 시달리며 괴로워할 때도 옆에 함께 안타까워하시며 힘과 위로가 되어 주셨던 선생님은 내가 당신의 조카딸쯤 되는 것 같다고 웃으신다. "시인 노릇보다도 수녀 노릇을 더 잘해야 한다."고 당부하시던 선생님은 오늘도 사면이 시집으로 둘러 싸이고 새소리도 들리는 서재에서 시를 쓰고 계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