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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도 하늘과 숲을 바라볼 수 있는 나의 작은 수방을 사랑한다. 새들의 노랫소리와 나무들의 기침소리가 거침없이 들어와 나를 흔들어 깨우는 새벽. 나의 가슴엔 풀물이 든다. 송진내음 가득한 솔숲으로 뻗어 가는 나의 일상. 너무 고요하고 평화스러워 늘상 송구한 마음으로 시작되는 나의 첫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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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엔 온통 봄꽃들의 축제인데 내 마음엔 왜 이리 봄이 더딘가. 마음의 메마름은 슬픔이다. 작은 일에 기뻐하고 감동할 수 없는 무딤과 무관심은 수도생활에도 지장을 준다. 비온 뒤의 정원은 더욱 아름답다. 수선화, 모란, 자목련, 은방울꽃, 조팝나무꽃, 영산홍, 산딸나무꽃, 사과꽃들이 향기를 토해내는 안 정원에 오랜만에 가보았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다양한 모습의 꽃을 피우고 나서 조용히 떠나가는 그 모습 또한 얼마나 의연한가. `수녀원에 생각보다 꽃이 많네요!` 하고 손님들이 감탄을 할 때마다 나는 기쁘다.
오늘 아침 성당에서 만난 부활초 옆의 패랭이 꽃이 하도 반가워서 가슴이 뛰었다. 내가 열다섯 살의 생일을 맞던 6월에 나의 우상이었던 여고생 세레나 언니가 가파른 언덕길 위의 우리집까지 찾아와 한다발 안겨 주던 추억의 패랭이 꽃. 이제는 패랭이꽃처럼 어여쁜 그 언니의 막내딸 아린이가 먼 나라에서 내게 편지를 보내 오고 있으니 나도 그애에게 톱니 모양의 앙증스런 꽃잎을 닮은 고운 추억을 심어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