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직장으로 옮겨온 지 2주일쯤 되었을 때였다. 나는 시내에서 3킬로미터쯤 떨어진 고모님 댁에서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길은 넓고 평탄했으나 포장이 되지 않아 자갈이 깔리고 패인 곳이 많았다. 나는 늘 야근을 하게 되어 보통 밤 열한 시가 되어서야 퇴근을 하곤 했다. 그날도 늦은 귀가를 하게 되었는데 페달을 밟고 떠나려니 라이트가 켜지지 않았다. 전구가 끊어진 모양이었다. 밤중에 수리한 수도 없어 나는 그냥 출발했다. 때마침 그믐경이라 시내를 벗어나니 주변이 캄캄해 갈 길이 난감했다. 자갈에 바퀴가 튕겨지고 요철 부분에 닿을 때마다 엉덩방아를 찧어야 했다. 방향만은 바로수의 도움을 받으며 기억을 더듬어 알 수 있었으나, 이리 가도 덜컹, 저리 가도 쿵 하는 고역이 계속되었다. 한참을 그렇게 진땀을 빼며 가자니까 뒤에서 환히 불빛이 비쳐오기 시작했다. 그때처럼 빛의 고마움을 느낀 적은 일찍이 없었다. 오토바이였다. 나는 금방 지나갈 오토바이인 줄 알고 있는 힘을 다해 페달을 밟았다. 이럴 때 1미터라도 더 가려는 욕심에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잠깐 나를 추월해 갔던 오토바이가 그자리에 머물더니 내게 앞장서서 가라고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미처 인사도 못한 태 무조건 달리기 시작했다. 오토바이는 최저 속력으로 서서히 내 측면을 달리며 앞을 비춰 주었다. 덕택에 무사히 귀가했지만 나는 그 고마운 사람의 얼굴조차 자세히 봐 두지 못한 걸 후회했다. (충남 괴산군청 근무)
진정한 만남 - 채규철
그 사람을 가졌는가.
만리 길 나서는 날, 처자를 맡기고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너 뿐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 사람만은 살려 두거라"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너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오"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아무리 읽어도 싫지 않은, 나의 애인과 같은 이 노래에 떠오르는 얼굴들이 내게는 있다. 내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그것도 온몸의 반 이상이 3도 화상을 입고 오른쪽 눈에는 유리 조각이 박혀 실명까지 한 보기 흉한 내 모습을 감싸 안아 준 아내. 그녀는 비관하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눈에는 당신이 절대로 흉하게 보이지 않아요. 화상을 당하기 전의 모습대로, 아니 그보다 훨씬 아름답게 비쳐요."
또 한 얼굴이 있다. 나둥그러져서 불타고 있는 차, 그 속에서 내 몸을 의식했을 때, 나는 앞으로 두 시간밖에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마지막 남은 두 시간의 목숨. 그것을 쓰는 길을 나는 부산 복음병원의 장기려 박사님으로 택했다. 나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질병 치료를 위해 시작한 청십자 운동을 계속해 달라는 유언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분은 자식같이 정성껏 나를 돌보아서 두 시간짜리이던 생명을 몇백 곱으로 늘려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