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겨울철이 되어 장갑을 낄 때가 되면 나는 곧잘 어느 소녀의 환상에 젖어들게 된다. 난 대학 입학 시험을 앞두고 입학 원서를 사기 위해 수험생들이 교문을 드나들 때면 교문 앞에 서서 대학 입학 시험 문제지를 프린트해 팔던 고학생이었다. 날씨가 몹시 차갑던 날이었다고 기억된다. 그날따라 추위 때문이었는지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내가 팔고 있는 시험지엔 눈길조차 돌리지 않고 입학 원서만 사 갖고 추위에 쫓기듯 되돌아가고 있었다. 바람에 날려가는 시험지를 과목별로 챙기고 있을 무렵, 어느 여학생이 내게 다가와 영어, 국어, 수학, 그리고 가정 모두 네 가지를 집더니 5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놓았다. 거스름돈이 없었다. 500원짜리를 바꾸기 위해 앞쪽 구멍가게에 다녀오니 그 여학생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먼지로 뒤덮인 시험지 더미 위엔 초록색 벙어리 장갑 한 켤레가 얌전하게 놓여 있었다. 조금 전 500원짜리를 내놓은 여학생의 것임에 들림없었다. 돈을 받아 쥐던 나의 시퍼렇게 얼은 손이 몹시도 애처로워 보인 모양이었다. 벙어리 장갑을 손에 든 나는 마음 깊숙한 곳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수험생들의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도, 입학식장에서도, 그리고 종종 캠퍼스나 도서관에서조차 그 여학생의 모습을 찾아보려고 노력했지만 그런 나의 바람은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아무튼 그해 겨울은 어느 이름 모를 여학생이 놓고 간 초록색 벙어리 장갑 덕분에 따스하게 지낼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두번째 맞이하는 겨울,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지금까지도 나는 그 초록색 벙어리 장갑을 끼고 유유히 교문을 들어서곤 한다. 학생들이나 동료 교사, 심지어는 교장 선생님까지도 웃으시지만 나는 그런 웃음이나 놀림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금년 겨울 그리고 내년 겨울에도, 가능하다면 그 다음다음 겨울까지도 오래도록 이 초록색 벙어리 장갑을 끼리라 다짐한다. (경기도 신흥중고등학교 교사)
진리의 빛을 찾아서 - 김수환
중학 시절 감명 깊은 은사님이 기억난다. 그는 신부님으로 우리에게 신앙에의 반석이 되어 준 분인데 내가 일제 말기에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온 뒤 인사차 모교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 신부님은 나를 반겨 맞으며 말없이 호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보이시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때묻은 내 사진 한 장이 나왔다. 내가 시련의 고비길에서 허덕이는 동안 그분은 나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를 드려 온 것이 아닌가. 평소의 그분의 온정을 피부에 느끼지 못항 나로서는 이름없는 한 제자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밤낮으로 기도해 주신 그 정성에 그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참기 어려웠다. (추기경)
회장님 퇴임하시던 날 - 이영근
어느날 내가 모시고 있던 회장님이 임기가 끝나 퇴임하게 되었다. 마지막 날이 되자 그분은 회사 일의 정리를 모두 끝냈고 개인적인 것까지 말끔히 정리를 마쳤다. 이제는 그냥 사무실을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도 그분은 그냥 앉아서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윽고 퇴근 시간이 되자 그분은 내게로 다가오더니 말했다.
"그동안 수고가 많았네. 내 마지막으로 자네를 집에까지 바래다 주지."
너무나 뜻밖의 말에 당황하면서 아무리 거절을 해도 그분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그분의 뜻대로 집 앞까지 함께 올 수밖에 없었다.나를 바래다 주고 나서 그분은 아무 말씀도 없이 그냥 가셨다. 마치 이제 나는 내 할일을 다 마쳤다는 표정으로. 그때 나는 깨달았다. 바로 저 마음이야말로 오늘의 저 분을 있게 한 것이 아닌가 하고. 퇴임하는 날까지도 끝까지 퇴근 시간을 지키는정신과 초라한 말단 사원까지도 한 사람의 동료로 사랑하는 마음, 그것에 나는 감동받았다. (주식회사 경방 수출과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