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가 쏟아지는 우리선인들 이야기
글자 수 맞춰서 글을 지으라
조선조 전기에는 중국 명나라와의 국교가 유례없이 도타와 많은 학자와 문인들이 서로 오갔다. 그 중에 최립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중종 34년에 나,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치는 사이, 뛰어난 글재주를 인정받아 자주 명나라에 드나들며 그곳 명사들과 많이 교유하였다. 뒤에 벼슬이 참판에까지 오른 분이다. 임진왜란 때는 외교문서 작성에 제1인자로서 공로가 컸고, 그곳 학자들로부터 명문장가로 추앙받기도 하였다. 또한 같은 고장, 같은 시대의 오산의 시, 석봉의 글씨와 함께 송도삼절로 꼽힌 그런 인재이다. 그가 중국에 갔을 때 그곳 문장가 중에도 제1인자로 명성높던 왕세정의 서재를 찾았더니, 마침 서양사람 하나가 찾아와 대나무 그린 병풍 위에 서문을 지어 달라고 청하는 것이었다. 엄주가 지어 놓을테니 아무날 다시 오라고 승낙하자, 폐백을 드리는데 마차로 한 대분이나 되는 부피였다. 글이나 서화같은 점잖은 예술품에 대한 사례는 예의 갖춰 피륙으로 하는 것이 예사라, 진귀한 물품이나 직접 돈으로 내더라도 의당 폐백이라고 한다. 지정한 날짜에 간이(최립의 호)가 먼저 찾아가 왕세정의 지은 글을 구경하니, 도도하게 천여 자에 이르는 대문장이었다. 시간이 되어 정작 부탁한 서양인이 와서 보더니 자못 실망하는 눈치라 주인이 물었다. `왜 글이 마음에 차지 않아서 그러는가?` `천만에.... 감히 어찌 그런 생각을 하오리까마는, 죄송한 말씀이오나 글을 부탁드리러 올 적에 저의 아비가 이르던 말을 미처 여쭙지 못한 것이 죄송해서 그럽니다. `이 그림 병풍은 우리집 보물이다. 네 갖고 중국에 가거든 다른 이는 말고 꼬옥 왕선생이 지으신 글로, 또 제일 가는 명필의 글씨를 받아서 가져오되 화폭의 여백이 한자로 스물다섯 자밖엔 더 들어갈 수 없으니 그리 알고 부탁드리라.` 하였는 것을 지난 번에 잊고 미처 말씀드리지 못하여서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게 되어 죄송하옵고, 이제 다시 부탁말씀 드리려 하나 감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그러옵니다.` 왕엄주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세상에 어디 글자 수 헤어가며 글짓는 이가 있단 말인가? 다시 짓지는 못하겠노라.` 그러고는 먼젓번 예물로 들여놓은 물건들을 도로 내어주려하니, 서양인도 그럴수는 없다고 굳이 사양하고, 사태는 아주 재미있게 벌어지고 말았다. 예술인들 사이에는 꼿꼿한 오기가 살아있고, 또 속에 품은 재주가 소리없이 고개를 쳐드는 법이다. 최간이는 번개같이 영감이 떠올라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스물다섯자 서문이 무에 그리 어려워서 그러십니까?` 그 당시 외국에 나가는 우리 사행들은 소매없는 남천익을 입고 품수에 맞는 색깔의 술띠를 흉복통에 띠며, 붉은 빛깔의 주립으로 무관의 평상복 차림을 하는 것이 법이다. 서양인은 이 낯선 차림의 이방인을 무척 기이한 눈으로 보았을 것이다. 주인이 너그러이 웃으면서 소개한다. `이 분은 이웃나라 조선에서 온 분인데, 문장실력이 대단한 분이외다. 최공! 한 번 지어 보시구려.` 최립은 붓을 집어들자 그 자리에서 스물다섯자 문장을 단번에 써 내려갔다. 이런 때 섣부른 통역을 중간에 넣고 하느니 이와같이 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유서양인화죽자하니
유죽은 습하고
연죽은 미하며
설죽은 한하고
풍죽은 소소연시유성지라
서양사람으로서 대나무를 그린 이가 있으니
비 맞은 대는 축축한 맛이 나고
안개에 서린 대는 희미해 보이며
눈을 이고 있는 대는 추운 느낌이 드는데
바람에 불리고 있는 대는 소소하니
금방이라도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구나
주인이 무릎을 치며 감탄을 한다. `조오타! 정말 실감이 나는 좋은 글이다. 내 재주 가지곤 어림도 없소이다.` 서양사람도 감탄하여 마음에 들어하고, 이제는 어떻게 명필을 구할까 하고 망설이는 눈치라, 일동은 또 한번 서로 보고 웃었다. `왕희지의 필법을 쏙 뽑은 신필이 여기 있는데, 누굴 찾소이까?` 그리고는 동행했던 한석봉을 시켜 써서 내주니, 서양인은 좋아서 가지고 돌아갔다.그리고는 왕세정이 서양인에게서 예물로 받은 것을 간이와 석봉에게 주려는 것이다. 굳이 사양했으나 막무가내라, 하는 수 없이 받아서 동행했던 일행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동양화 가운데서 전문가 아닌 아마추어로서 즐기는 그림을 문인화라 하는데, 그들은 거기 흐르는 고상한 운치를 사랑하였다. 매란국죽의 사군자도 처음엔 화법의 초보 과정이었으나, 각각 덕목을 붙여 문인화의 여기로 즐기었고, 여백에는 그림에 걸맞는 시나 문장을 필치좋은 글씨로 써서 함께 감상하는 전통이 생기게 된 것이다.
산신령의 노여움을 풀어야
옛날에 지방관이 탐욕을 부리거나 실수가 있으면, 백성이 산에 올라가 큰소리로 욕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렇게나 해야 시쳇말로 스트레스가 풀렸던 모양이다. 원주시에서 서울 쪽으로 가까이 안창이라는 곳이 있는데, 고려 때 굉장히 큰 규모의 절이 있었던 곳이다. 거기서 서울로 오자면 약간 후미진 곳에 묘한 이름을 가진 바위가 하나 있다. 이름하여 욕바위. 앞에서 보면 오똑하게 높이 솟았는데, 뒤는 등이져서 그대로 밋밋하게 산으로 연해 있다. 원주서 벼슬 살았던 이는 물론이요, 그 방향 고을에서 원 노릇을 하였던 이라면, 서울로 돌아갈 때에 반드시 이 목을 거쳐서 가야 하는데, 이자가 임지에 내려와서 못된 짓을 많이 하였다면, 그 피해를 입은 사람이 관원의 행차가 지날 때, 그 바위위에 올라서서 낱낱이 조목을 들어서 욕을 퍼부었더라고 한다. 물론 끝에 가서는 갖은 악담을 늘어놓았을 것이고... 그것을 듣고 원님이 화가 나서 `저놈 잡아오라.` 고 소리치면, 쫓아갈 신명도 안났을 것이고, 어쩌지 못해 쫓아 간대도 밑의 사람이 도달하기 전에 등성이를 타고 뺑소니치면 그만이다. 본래 욕이란 것은 남의 자존심을 상하게 해 주면 되는 것이고, 악담은 뒤끝이 좋지 않으라고 잘못되기를 비는, 말하자면 일종의 저주다. 그래서 남의 잘못을 욕할지라도 악담은 하지 말라고 일러오는데, 억울하게 피해를 당한 이라면 어떻게 욕만 하고 말 것인가?
자자손손이 어떻게 되라는 둥 갖은 악담을 늘어놓았을 것이니, 입담좋은 사람이 그 몫을 삯 받고 다니며 하는 이도 있었을지 모른다. 정혁선이라는 분이 청주목사로 내려갔는데, 밤에 어느 놈이 산에 올라가서 걸차게 욕을 해댄다. 물론 새로 도임해 갔으니, 자신에게 돌아올 욕은 아니었겠지만 속이 상한다. 그것이 여러 날 계속되기에 그 고장 출신의 이속을 불렀다. `사람이 그럴 리는 없고, 아무래도 우암산 산신이 덧나서 그런 모양이니, 집집마다 10문씩만 거둬서 굿을 하든지 제사를 지내 주도록 하라.` 분부받은 아전 생각에, 산신이 그런게 아니라고 했다간 그놈을 잡아 들이라고 할 판이라, 구역을 갈라 분담해서 돈을 거두고 하라는 대로 기도행위를 하여서 며칠은 그냥 조용하였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또 그놈이 욕질을 한다. 고요한 밤하늘에 욕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니 멀리까지 들렸을 것이고, 그 중의 몇몇은 아무개 놈의 짓이 틀림없다는 지목도 갔을 것이다. 원님은 또 담당자를 불렀다. `산신령이 단단히 노여운 모양이다. 일전의 그것 가지고는 심정이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니, 이번엔 갑절씩 거둬서 앞서보다 더 성대하게 치르도록 해라. 얻어먹을 만큼 먹어야 가라앉을 모양이로구나.` 없는 중에 생돈으로 추렴을 내면서 백성들의 원망은 원님보다도 밤중에 소리지른 놈에게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굿판을 차린 뒤로 신령님의 노여움은 식어졌고 원님은 빙싯이 웃었다. `싱거운 산신도 다 있지. 좀더 보챘더라면 더 얻어먹는 것을....` 한가지를 보면 열가질 안다고, 이만한 배짱이라면, 아마 공사도 변변하게 잘 처리했을 것이다. 섭섭하게도 그의 다른 행적이나 생존기간에 대해서는 달리 나온데가 없다.
이것은 딴 이야기지만 한 곳을 감사의 행차가 지나가는데, 길옆 정자나무 아래 덕이 진 곳에 건장한 청년이 조골조골하게 참혹하도록 늙은 할머니 하나를 앉혀서 부축을 하고 서 있다. `저건 어떠한 백성인고?` 그 고장의 연세높은 집장이 앞으로 다가서며 여쭙는다. `이 골짜기 안 20리 쯤에 사는 백성이온대, 어미 말이 `나라님 거동하시는 행차가 거룩하다더구만도 서울을 못 가니 구경할 길이 없고, 감사님 영내 순찰하시는 행차 또한 근감하다던데 그거라도 한번 구경하였으면...` 하고 입버릇처럼 소원해 왔건만 살기에 바빠 이뤄드리지 못했다가, 보시다시피 기력이 아주 쇠해 더 지탱하기 어렵게 돼서, 이번 기회에 사또 행차를 보여드리려고 먼길을 업고 와 구경시켜 드리고 있는 것이랍니다.` 감사는 그의 효성에 감동해 누구 다른 사람에게 붙들어 드리라 하고, 그 효성스런 청년을 앞으로 불렀다. 그리곤 등을 투덕거리고 껄그러운 손도 만지며 무수히 칭찬하고 행리 중에서 비단 두 필을 꺼내 상으로 주고 그곳을 떠났다. 감사라는 직책이 본시 각 고을의 직책을 살피며 돌아다니는 것이라, 그 행보에 열 고을을 두루 돌아보고, 이제 돌아오는 길인데 앞서 그곳에서 벌어졌던 것과 똑같이 늙은 할머니를 젊은이가 부축하고 서 있는 것이다. 행차를 멈추고 까닭을 물으니 그때 그 집강이 와서 고한다. `먼젓번 상금을 내리셨던 효자집 옆에 사는 놈이온데, 평소에 어미에게 심하게 굴어 불효로 소문난 녀석이, 상 타 먹을 욕심에 어미가 싫다고 싫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업고 와 구경시키고 있는 것이옵니다.` `그랴?` 일러바친 사람은 못된 놈 볼기 몇 대 얻어맞게 하자던 것인데, 감사는 시침 뚝 떼고 청년을 불러서 전과 똑같이 상급을 주고 그곳을 떠났다. 그런데, 다음부터 그곳 관청에서 사령이 나오면, 두 사람 효자를 똑같이 찾아보고 인사를 드렸다. `어떻습니까? 어머님 봉양하시기에 어려움은 없으신지 알아오라는 분부십니다.` 하 세우 인사를 오는 때문에 불효자는 저도 모르게 진짜 효자가 되어 버렸다는 그런 이야기다. 때려줘서 혼내느니 칭찬해서 효자 만드는 일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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