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전에 하와이에 가서 반년 남짓 지낸 일이 있었다. 계절의 변화도, 시간의 흐름도 전혀 실감할 수 없는 이 평화로운 섬에서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는 한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나한테 중고 자동차를 산 이름없는 세일즈맨이었다. 자동차 시운전을 마치고 그 집 응접실에서 매매 계약을 한 다음, 우연히 뒷마당을 보니 거기에 화려한 요트 한 척이 잔디밭에서 출항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선채가 크지는 않았지만 갖출 건 다 갖춘 호화선이었다. 저게 왠 배냐고 물었다가 나는 그의 대답에 완전히 감동하고 말았다. 그 호화선은 이 세일즈맨 부부가 결혼한 그 다음 일요일부터 매주말마다 맨손으로 뒷마당에서 20여 년 동안을 조금씩 완성한 배라고 했다. 20대의 새파란 나이에 결혼 기념으로 착수한 이 '조선 공사'는 머지않아 이들 부부가 은혼식을 맞게 될 때까지는 어엿이 태평양 바다에 뜨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미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일요 목공'의 어깨가 여간 으쓱하지 않았다. 만일 이들이 4반세기에 걸쳐 오직 부부의 힘만으로 뒷마당에서 완성한 배 위에서 그들의 은혼식 잔치를 갖는다면 어찌 그 요트가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의 요트만 못하다고 할 것인가. (연세대 철학과 교수)
돌려받은 1천 엔 - 김상순
30일의 긴 항해 끝에 배가 나고야 항에 입항했다. 나는 전차를 타고 사카에까지 외출을 나갔다.한 달이 넘을지도 모르는 고립된 항해 생활의 일용품을 사들고 백화점 문을 열고 나왔을 때는 1천 엔짜리 지폐 두 장과 짤랑거리는 동전 몇 개가 남아 있었다. 아까부터 흐리던 하늘에서는 기어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걸음을 재촉해 전차 정거장으로 향했지만 정거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빗방울이 굵어지고 바람까지 불었다. 모처럼 육지의 먼지 섞인 비에 흠뻑 젖어서 감기라도 걸려 보고 싶었지만, 대부분의 행인들은 어느새 우산을 들고 있었다. 나 혼자 비를 맞고 걸으면 너무 초라해 보일 것 같았다. 마침 우산을 파는 상점이 보였다. 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열여덟 살 가량의 점원 아가씨가 친전하게 맞았다.
"어서 오세요. 어느 우산으로 드릴까요?"
남은 돈으로 저녁 식사와 영화 구경을 계획하고 있는 나는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점원 아가씨가 우산 하나를 들어 보였다.
"이것으로 고르시겠어요?"
나는 우선 값이 가장 싼 1천 엔짜리인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익숙한 솜씨로 포장까지 해주는 것을 받아 들고 돈을 지불하려 하자, 아가씨가 말했다.
"2천 엔입니다."
1천 엔인 줄 알았더니 나는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1천 엔짜리로 바꾸거나 취소하고도 싶었지만, 그런 의사를 표시할 내 일어 실력도 문제고 금방 펼치고 갈 우산을 정성스레 포장해 주는 것도 고마웠다. 나는 태연한 태도로 돈을 내주었다. 비가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다. 새로 산 우산을 들고 상점에서 300미터 이상을 걸어 나왔을 때였다.
"아저씨, 아저씨!"
뒤에서 분명히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우산 상점의 점원 아가씨였다. 순간 놀랍고 불안한 생각이 스쳤다. 내가 지불한 돈이 위조 지폐? 아니면 돈을 덜 지불했나? 이윽고 그녀는 뛰어오던 걸음을 내 앞에서 멈추고 1천 엔짜리 지폐한 장을 내밀었다.
"이 돈 돌 받으세요. 장부에 기입하려고 정가표를 보았어요. 아저씨가 사 가신 우산은 1천 엔짜리인데 모르고 2천 엔을 받았어요. 저의 실수로 1천 엔이나 더 받아서 돌려드리려고 뛰어왔어요."
그녀는 무슨 큰 잘못이라도 지은 표정이었다. 그녀의 말을 알아 듣는 데 내 서투른 일어로는 시간이 걸렸다. 머뭇거리고 있는데 그녀가 내게 내민 지폐 위로 빗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1천 엔을 더 받아서 당황한 탓인지 그녀는 우산도 쓰고 있지 않았다. 나는 내민 지폐를 받아 넣고 우산을쓰고 있지 않은 그녀를 상점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함께 걸었다.
"모두 우산을 들고 있어 아저씨를 찾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어요. 더구나 저희 상점에 다시 들르시기 어려운 외국인 같아서 더 염려했어요." (일본 치요다 구 이스턴 해운사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