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한 어부의 아들 로모노소프를 18세기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학자로 만들어 준 것은 그의 결심 하나였다. 열 살 때부터 소년 로모노소프는 아버지를 따라 백해에 나가 고기잡이를 익혔다. 9년 동안의 어부 견습을 거쳐 그는 훌륭한 어부로 성장해 갔지만 공부하고 싶은 욕망을 끝내 뿌리칠 수가 없었다. 열아홉 살 때 그는 드디어 집을 떠나 공부할 길을 찾겠다고 마음먹고 모스크바로 향했다. 생각해 보면 열아홉 살까지 교육을 받아 본 일이 없던 무식한 소년이 공부할 결심을 했다는 것이 이미 늦은 일이었다. 지금으로치면 같은 또래는 이미 대학에 들어간 나이에 한글을 익히기 시작한 셈이 될 것이다. 그렇게나 늦은 결심이었지만 바로 그 결심이 그후로 로모노소프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의 결심으로 러시아는 이름없는 어부 한 사람을 잃고, 그 대신 위대한 과학자 한 사람을 얻은 것이었다. (외국어대 교수)
내 자신을 버리는 일 - 조영심
저는 온 세상을 마음껏 구경하고 돌아다니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운 좋게,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영국 항공사에 취직이 되어 저는 꿈에 그리던 새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홍콩에서 시작된 첫 사회 생활은, 제 가치관을 온통 흔들어 놓기만 했습니다. 문화적 이질감과 현실 사회의 부조리, 무질서... 저는 가슴이 꽉 막혔습니다. '나는 무엇인가. 우리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결굴 저는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 순천으로 돌아와 버렸지요. 주위에서는 좋은 직장을 차버렸다고, 복에 겨운 모양이라고 쑤군대기도 했습니다만, 솔직히 저는 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 급급해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변하길 기다리기 전에 저부터 먼저 변해야 했습니다. 저는 우선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나 아닌 '나'로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겐 그동안 직장 생활하면서 모은 돈이 약간 있었지요. 그 돈으로 조그만 안식처를 마련하고, 병들고 가난하고 오갈 데 없는 분들을 우리 식구로 맞아들였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20대에 이 일을 시작했는데 제 나이 벌써 사십 줄에 이르렀습니다. 행려병자를 돌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였느냐고 묻는 이가 많습니다. 가족들의 반대, 결혼을 포기해야 했던 아픔도 컸지만 '내 자신을 버리는 일'이 가장 힘들었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기쁨을 노래하는 것도 결국은 가진 것을 버림으로써 뭐든 행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무의탁 행려병자 공동체 작은 둥지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