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방송을 끝내고 막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누군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처음 만났으면서도 어디선가 늘 마주치던 모습처럼 환한 웃음을 띤 얼굴이었다. 경비원 아저씨가 말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아침 일찍 찾아와 지금까지 여기 서서 기다렸어요. 꼭 만나 보고 싶다고..."
아무 말도 없이 그녀는 작은 상자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어디에 살고 있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알 길이 없었다. 성냥 갑만한 작은 상자를 받아 들고 어설픈 인사를 나눈 채 급한 약속이 있었던 나는 그대로 자리를 뜨고 말았다. 차 속에서 궁금하던 상자를 열어 보았다. 손으로 곱게 접어 만든 종이 상자였다. 상자를 열면 또 하나의 하얀 상자가, 그 상자를 열어 보니 또 다른 상자가... 놀라움과 긴장으로 하나하나 풀어본 상자는 오십 개나 되었다. 마지막, 새끼손가락만한 작은 상자 속에 가느다랗게 돌돌 말린 종이 하나가 들어 있었다. 깨알만한, 그러나 또박또박 정갈하게 씌어진 글씨가 확 눈에 들어왔다. (God bless you(신의 은총을)!) 갑자기 신의 은총을 나 혼자 다 받은 듯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름도 주소도 모르는 여자가 내게 준 그 선물은 겨울 내내 나를 따뜻하게 해주었다. (방송인)
바다같이 넓어라 - 박대인
미국 고향친구가 생각난다. 그 사람은 어렸을 때 바다를 무척 좋아했다. 우리는 젊은 시절에 같이 배를 많이 탔다. 여름이면 매일 수영도 같이 했다. 그는 나중에 음악 공부를 많이 했고 철학을 전공해 대학원까지 나왔다. 한때 철학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바다 생각이 너무 간절해서 교실을 떠나 바다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금은 자기의 작은 배로 평범한 어민 생활을 하고 있다. 고기 잡는 철학가. 지금은 50대의 가장이지만 그 친구야말로 젊은이의 매력을 그대로 간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인, 감리교 신학대학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