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서울 동성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국 천주교회 설립 200주년 기념 행사가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처음으로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 그 무렵이었다. 그해 가을 학교 축제 기간중에 종교부에서 특별한 사람을 초대했다. 그분은 20대의 맹인 여자였다. 어렸을 때는 정상아였는데 약을 잘 못 쓰는 바람에 시력에 이상이 오더니 급기야는 완전히 실명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때 그녀의 어머니가 곁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느님께 기도하거라. 그러면 들어주실 것이다."
이날부터 어린 소녀는 앞을 보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정말 간절히 빌었다. 그러다가 어른의 나이까지도 끝도 없는 나날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기도를 해온 것이다. 그 무렵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상당한 기금을 할애하여 전국적으로 맹인들에게 무료 개안 수술을 해주기로 했다. 그 엄청난 희망의 초대장이 그녀에게도 전달되었다. 그녀는 자기의 기도가 허락된 것을 기뻐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드디어 수술을 받고, 마취가 풀려 정신이 든 다음이었다. 의사가 테스트를 했다.
"이게 보입니까?"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이었다. 그 여자는 그만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며 통곡을 했다. 그녀는 하느님께 이렇게 대들었다고 했다.
"하느님, 저는 15년을 참았어요. 앞으로도 더 참으라고 하면 저는 참을 수가 있어요. 그러나 우리 엄마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을 거예요. 그녀의 절박한 처지를 안 의사는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다시 한 번 수술을 해보자고, 그녀는 두 번째로 수술을 받았다. 가슴을 조이는 운명적인 상황이 다시 찾아왔다. 수술이 끝나고 의사가 물었다.
"이게 보입니까?"
아, 뭔가 보이는 것이 있었다. 그 순간의 벅찬 감격은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때는 명동성당 옆에 성모병원이 있었다. 그녀는 곧바로 성당으로 갔다. 마침 저녁 미사가 있어서 미사에 참례하고 영성체를 손에 받아들었다. 자기 눈으로 하얀 밀떡을 보면서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했다. 그녀는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께 약속을 했다.
"예수님, 이제 이후부터의 제 인생은 당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그토록 절실히 깨달은 그녀를 모두가 우러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