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모두 떨어져 나가 손바닥만으로 그림을 그리던 김아무개 씨. 내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는 이미 그렇게 손가락이 떨어져나가 손바닥에 붕대를 매고 거기에 붓을 꽂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손가락이 하나 떨어져 나갔을 때 나는 붓 잡는 연습을 새로 시작했지요. 그리고는 익숙해질 만하니까 또 하나가 떨어져 나가더군요. 또다시 붓 잡는 연습을 하고, 익숙해지니까 또 하나가 떨어져 나가고... 그렇게 붓 잡는 연습만 하면서 몇 년을 보냈지요. 이젠 이렇게 손가락 없이 그리는 것이 오히려 편해요. 적어도 이제 손목이 떨어져 나갈 염려는 없으니까요."
그는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나를 오히려 위로하고 있었다. 그는 벌써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그림은 지난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소록도를 방문했을 때 선물로 증정되었으며, 지금은 아마 교황청 어딘가에 걸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