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입니다. 라디오에서 곳곳의 홍수 소식을 들으며 나는 지난 여름의 내 아픈 기억에 잠깁니다. 중매로 만난 우리 부부는 꿈 같은 신혼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마을에 홍수가 닥친 것입니다. 사정없이 덤벼드는 수마에 인간은 무력했고 우리는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탁류에 어떤 아이가 떠내려가는 것을 발견한 그이가 불룩한 내 배를 흘긋 쳐다보는가 했더니, 이내 물 속으로 뛰어든 것입니다. 아이는 구했으나 남편은 그 이튿날 나뭇가지에 걸린 채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울고 지낼 수만은 없었습니다. 일어서야 했습니다. 남편이 구해 놓고 간 그 아이 성훈이는 홍수에 부모를 잃었습니다. 나는 성훈이를 데리고 친정이 있는 이곳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지금 나는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고 그이가 남기고 간 아이와 나를 친엄마처럼 따르는 성훈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나와 같은 불행인 다른 사람에게는 없기를 기도합니다. 봉투 색깔이 예쁘죠? 우리 성훈이가 색칠해 준 거예요.>
이 편지는 지난 여름 장마철에 내게 온 편지 가운데 하나다. 나는 하루에 1천 5백 통에서 2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오늘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모든 행복과 불행의 사연이 그 속에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잊혀지지 않는 사연이 있어 여기에 소개한 것이다.
(MBC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