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본에서 유학하고 있던 시절의 얘기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한 친구가 연애를 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그 친구는 약간 덤벙거리는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난 한 여인에게 아주 홀딱 반해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연애 편지를 써야겠는데 어떻게 쓰면 좋을지 모르겠다면서 마치 열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끙끙 앓고 있었다. 몇 장씩이나 종이를 버려 가면서 친구는 마침내 편지 한 장을 완성했다. 완성된 편지를 무슨 보물이나 만지듯 하며 조심스럽게 보여 주었는데, 그 내용이 감미로운 미사여구의 행진이겠거니 여긴 나의 상상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저는 지금 대학 졸업반입니다. 졸업만 하면 곧 훌륭한 회사에 취직하여 성실한 모범 사원이 되겠습니다. 당신과 결혼해 행복하고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만이 저의 꿈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그런데 그 친구 어떻게나 열에 들떠 덤벙댔던지 연애 편지를 봉투에 넣는다는 것이 그만 이력서와 바꿔 넣고 말았다. 다시 말하면 '훌륭한 회사'의 사장에겐 연애 편지를 보낸 셈이 되었고, 연인에게는 이력서를 보낸 셈이 된 것이다. 물론 그 친구는 자기가 한 일을 알 턱이 없었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참 이상한 것이어서 의외로 이 잘못 보내어진 편지들이 그에게 더없는 행복을 불러 왔다. 즉, 이력서를 받아본 연인 그녀의 아버지는 이만한 신원이면 신랑감으로 충분하다는 평가를 내렸고, 한편 연애 편지의 굳센 모범 사원에의 결심과 정열을 읽은 회사 사장은 이만하면 사원감으로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년 후 그들은 결국 결혼하게 되었고, 술까지 끊은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회사에 없어서는 안될 모범 사원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기업가로 성장해 최근에는 그들이 처음 만났던 바닷가에 별장을 지었다는 소식이 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