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을 앞둔 늙은 아버지가 평생을 두고 속을 썩혀 온 아들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의 아들 마하는 불행히도 세 가지의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노름으로 세월을 보내고, 술로 건강을 해치며, 하루도 춤을 추지 않고는 못 사는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그의 아들을 한때는 내쫓기까지 했고, 어는 때는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지만 아들의 못된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렇게 많던 재산은 거의 탕진되고 집안 살림은 말할 수 없이 궁해지고 말았다. 그러나 임종을 눈앞에 둔 아버지의 마음은 재산의 탕진보다 아들의 참회만을 바랄 뿐이었다. 아버지는 남은 숨을 몰아 쉬면서 아들을 침대 옆으로 불렀다.
"이제 무슨 말로 널 타일러야 할지 모르겠구나! 세상에서 정말 미친 사람은 자신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너의 그 자신감이 얼마나 큰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마지막으로 너에게 오직 한 가지만 부탁하겠다. 네가 노름을 계속해야 한다면 말리진 않겠다. 그 대신 최고의 노름꾼과 노름할 것을 약속해 다오. 그 다음, 술을 마시고 싶거든 반드시 자정이 넘은 후에 술집에 들어가거라. 그리고 댄서들과 춤을 추고 싶거든 이른 새벽에 춤을 추러 가거라. 네가 이 말만 들어준다면 나는 편안히 죽을 수 있을 것 같다. 약속해 다오. 내 아들아, 이 정도의 부탁은 어렵지 않겠지."
아들 마하는 아버지의 이해심에 감동되어 그 정도의 말씀이라면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아버지의 두 손을 잡으며 엄숙하게 약속했다.
"걱정 마십시오, 아버지. 그 정도의 약속만큼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늙은 아버지는 안도의 숨을 쉬면서 눈을 감았다. 아버지를 잃은 그는 슬픔을 가누지 못한 채 석 달 동안은 근신하면서 조용히 지냈다. 그러나 슬픔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얼마 안 가서 그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겨 준 묵직한 돈주머니를 만지면서 노름집을 찾아갔다. 이상한 흥분마저 느끼면서 그는 가장 노름을 잘하는 사람을 찾았다. 마침 그때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노름을 잘한다는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 노름왕의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발가락이 나오는 다 떨어진 구두에 옷이라고는 누더기를 걸쳤으며, 퀭한 눈에 등은 굽어 폐병 환자처럼 기침을 하고 있었다. 그를 둘러싸고 한창 노름에 열중하고 있는 얼굴들을 하나하나 둘러본 마하는 더욱 놀랐다. 저마다 원한과 복수에 차 있고, 범죄와 절망, 탐욕과 자살 직전의 비통스런 얼굴들이었다. 모두가 마치 죽음의 쇠사슬을 잡아당기고 있는 것 같았다.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용기를 잃고 마하는 말없이 노름집을 빠져 나왔다.
그러나 술은 자기를 즐겁게 해주리라 믿고 자정이 가까워지도록 기다리다가 어느 술집 문을 두드렸다. 술집에 들어서자 우선 그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앞이 안 보이는 담배 연기 속에서 정신을 잃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굴러 다니고, 빈 병을 가슴에 안고 소리지르는 부랑자, 술을 내놓으라고 칼을 들이대는 알코올 중독자들... 도무지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카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주인을 소리쳐 부르니 창문으로 머리만 내밀고 귀찮은 표정으로 뭘 원하느냐고 물었다. 마하는 구토증을 느끼면서, 여기 이 사람들 뭣하는 사람들이냐고 물었다. 술집 주인이 소리쳤다.
"그 사람들 죽을 때까지 우리 집에 술 마시러 오는 환자들이오."
그리고는 문을 닫아 버렸다. 마하는 방금 본 알코올 중독자들이 쫓아올 것 같아 숨이 차도록 그곳을 뛰어나왔다. 술이 인생을 그렇게 망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어두운 밤거리를 헤매다가 마하는 자신을 기쁘게 맞이해 줄 댄서를 만나기 위해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다. 카페 문이 열리자마자 그는 평소에 잘 아는 아름다운 댄서, 하바바의 방문을 두드렸다. 자정이 넘어 피곤하게 잠들었다 깬 여인의 모습은 거짓말같이 딴 사람처럼 보였다. 주름투성이, 진한 화장을 지우지 않은 채 잠이 들었는지 기름이 흐르는 얼굴에 머리카락은 마귀 할머니 같고 핏기가 하나 없는 해골 같은 몸은 금방 쓰러질 듯했다. 그러면서도 하바바는 이른 아침 찾아온 손님을 반기면서 무얼 원하느냐고 물었다. 술잔을 통해서 그녀를 아름답게만 보던 청년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 버렸다. 잘 있으라는 인사도 못하고 마하는 하바바의 집을 나왔다. 천천히 집으로 오면서 그는 처음으로 어떤 해방과 자유를 찾은 심정이었다. (성옥련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