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추석만 되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벌써 16년 전 군복무를 할 때였다. 추석 전날, 전우들은 초저녁부터 서성이며 떠오르는 달을 맞았다. 모두들 둥근 달의 모습에서 송편을 빚고 있을 어머니나 누이의 모습을 찾는 듯이 보였다. 그때 며칠 전에 배속되어 온 김이삼이란 이등병이 나를 찾아왔다. 내일 아침과 점심을 부대에서 먹지 않을 테니 쌀과 부식을 좀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까닭을 말하지 않고 침통한 표정을 짓는 게 석연치 않았다. 그때만 해도 간혹 탈영병이 생기던 때라 불길한 예감까지 들었다. 나는 까닭을 모르고는 줄 수 없다고 타일렀다. 강경한 내 태도에 김 이등병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는 어려서 부모를 다 잃었다고 했다. 입대하기 전에 충남 서산의 어느 집에서 일꾼으로 살면서도 명절이나 제삿날엔 잊지 않고 꼬박꼬박 제사를 지냈는데, 이번 추석에 차례를 지내지 못하면 부모님들이 얼마나 쓸쓸해 하시겠냐는 것이었다. 고향땅을 향해 밥이라도 한 그릇 올리고 싶다는 그의 말에 나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이 얼마나 순박하고 감동적인 마음인가! 나는 쌀과 부식을 골고루 나눠 주고 지방까지 써주었다. 그날 밤 나는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과 형제들 생각에 영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부모님께 효도를 하지 못한 게 부끄럽기만 했다. (공주 장기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