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기간이 끝났다. 버스 타는 데까지 바래다 주시던 아버지는 차비를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서운한 듯 말씀하셨다. 나는 군생활을 하면서 적은 월급에서 저금을 하였다. 전우들로부터 지독하다느니, 장가 밑천을 하려고 그런다느니, 그까짓 적은 돈을 저금해 뭘 하느냐는 등 핀잔을 받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지만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하자는 것이 나의 생활 신조다.
1년에 한 번 기대하던 휴가를 나오는 날, 우체국에서 저금한 돈을 찾아 동생들의 학용품과 늙으신 부모님 곁에 고기라도 사 갖고 가는 마음이란 얼마나 흐뭇한 일인지. 농촌에서 태어난 나는 늙으신 부모님이 고생으로 찌든 손으로 일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잘살아 보겠다고 혼자서 다짐을 하기도 한다. 어떤 친구들은 귀대하면 많은 돈을 집에서 가져왔다면서 자랑스러운 듯이 카페나 당구장 출입을 하지만, 내 딴엔 내가 아낀 돈으로 집에 다녀온 것이 자랑스럽다.
하지만 보내는 자식의 손에 돈 한 푼 쥐어 주지 못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은 자식의 마음보다 더 아프신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문득 호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빨갛게 익은 사과를 한 알을 꺼내셨다. 그것을 내 가방에 넣어 주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면서 나는 고마운 미소를 지었다. 비록 한 알의 사과라지만 내겐 너무도 귀한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사과 한 알, 버스 속에서 사과를 만져 볼 때마다 차창 밖의 높은 가을 하늘이 더 푸르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