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바라보며 올해도 다 가는구나 하는 서글픔과 함께 12월 25일에 눈길이 머물자 새삼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일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유난히도 춥고 바람이 차가웠던 대구에서였다. 기숙사 안은 온통 겨울 방학, 크리스마스 계획으로 술렁대었다. 당시 간호학과 학생이던 나는 '이번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까?' 하고 생각하면서 하모니카를 들고 뒷산에 올라갔다. 그때 문득 군부대 초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초병을 보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곧 시내로 나갔다. 다과점에 들러 도넛을 사고 홍차도 준비했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이브, 나는 커다란 보온병에 홍차를 끓여 넣고 조그만 그릇에 도넛을 담아, 지금은 전방 어느 후송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와 함께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총을 든 군인이 무서워서 초소 앞까지는 못 가고 근처에서 먼저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소리를 치고서야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우리는 차를 따라 주고, 빵을 나눠 주었다. "수고하십니다!" 하는 우리의 합창에 반가워하는 군인들의 얼굴이 달빛에 비칠 때, 나는 기뻐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다음 초소에서 그 다음으로, 우리는 신나게 다녔다. 어떤 군인 정신이 투철한 일병 아저씨는 "손들엇!" 하며 총을 들이대기도 했고, 그 바람에 우리는 놀라 보온병을 땅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며칠 뒤 사령부 신문에 '어느 산타 할매, 초소를 방문하다!' 라는 기사가 실렸다. '그 산타 할매가 바로 나란 말이야.' 나는 몇 번이나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