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슴에 난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다면 난 헛되어 산 것이 아니니라. 한 인생의 아픔을 달래 줄 수 있다면, 한 고통을 위로해 줄 수 있다면, 기운을 잃은 한 마리의 개똥지빠귀를 둥지에 데려다 줄 수 있다면 난 헛되이 산 것이 아니니라. - 에밀리 디킨슨
내가 파월 국군으로 부산항에서 배를 타려고 전방 모 기지에서 기차로 출발, 청량리역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수많은 환송 인파가 행운을 빌어 주고 있었지만 나는 고향이 경상도라 아무도 나오지 못했다. 그냥 차창에 기대어 바깥 인파만 쳐다보다 기차가 출발 신호와 함께 서서히 홈을 빠져 나가는 순간, 누군가가 창문을 통해 하얀 쪽지를 건네주었다. 캄캄한 밤이라서 그 사람이 누군지 얼굴을 분간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 쪽지를 받아 들고 읽어 보았다.
<약속합시다. 살아서 돌아오신다고.>
글씨 밑에 주소와 이름이, 그것도 여성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정말 고마운 여성이구나 싶어, 월남에서 전투를 하면서도 가끔 나는 그 쪽지의 주인공을 생각했다. 사실 벅찬 소대장의 전투 임무 때문에 자주 그 쪽지의 주인공에게 소식을 전해 주진 못했지만 그 여성은 꼬박꼬박 서신을 보내 주었다. 그후 나는 상처를 입고 불구자가 되어 조국에 돌아왔다. 병원 생활을 끝내고 지금은 사회인이 된 나는 그 여성의 고마움이 생각나서 주소록을 뒤져 보지만 찾을 길이 없다.
(회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