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젊었을 때 나는 똑똑한 사람들을 훌륭한 인간으로 알았다. 이제 나이가 들어 나는 친절한 사람들이야말로 훌륭한 인간임을 안다. - 아브라함 헤셀
얼마 전 어떤 제자의 가정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특별한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시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이 나서 밤이 좀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보기로 하였던 것이다. 초인종을 누르자 내 목소리를 알아들은 부인이 반겨 맞아 주었다. 아이들도 모두 나와서 인사하고 커피를 끓여 온다, 사과를 깎아 온다, 온 집안이 떠들썩할 만큼 환영을 받았다. 한 30분 동안 우리는 아이들 자라는 이야기며 살림 이야기며 두서없는 몇 마디를 주고받다가 밤도 늦었고 밖에서 기다려 주는 운전기사에게도 미안해서 곧 일어났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였다. 운전기사의 기분이 퍽 가벼운 듯 보였다. 나는 내가 일찍 나와 줘서 고맙게 생각하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에 운전기사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커피요."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커피라니요?"
그러자 운전기사가 말했다.
"따끈한 커피 한 잔 마셨어요. 그 댁 부인이 갖다 주시던데요."
나는 아차 싶었다. 그 운전기사는 내가 특별히 부탁해 커피를 갖다 준 것으로 믿은 모양이었다. 나는 속으로 흐뭇하게 생각하면서도 그 집 주부의 놀랍도록 세심한 배려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하고 함께 이야기하면서 어느새 밖에 있는 운전기사 생각까지 했다니. 겉으로만 반긴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고, 사소한 데까지 마음을 쓰는 그 주부의 섬세함은 오래도록 내 마음을 훈훈하게 하였다.
"오늘 기분 좋겠수."
운전기사에게 말을 건네니 그도 내가 부탁한 커피가 아님을 눈치챘는지 이렇게 말했다.
"정말 흔한 일이 아니죠."
그 후 나는 커피 잔을 들 때마다 그 여인을 마음에 떠올리고 마음 흐뭇함을 느끼곤 한다. 아마 운전기사도 그러하리라. (연세대 여학생 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