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면 생각이 난다. 10년 전 어느 날 나는 군청 공보실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사기를 가지고 어느 농촌을 찾아갔다. 그곳은 면에서 8킬로미터나 떨어진 산골이었다. 연일 야근 근무로 몸도 피로하고 날씨도 덥고 해서 그냥 면 소재지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말까 했으나, 면장님이 직접 걸망을 만들어 영사기를 짊어지시기에 나도 하는 수 없이 녹음기를 어깨에 메고 구슬땀을 흘리며 뒤쫓아갔다. 막상 가보니 영사기를 놓을 만한 테이블 하나 구할 수도 없어, 나의 불평은 더욱 심했다. 하는 수 없이 우리 일행은 마을 뒷산으로 올라갔다. 어느 묘 앞 상석에다 영사기를 놓고 스크린을 여기에 맞추어 치는 수밖에 없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큰 잔치나 난 듯이 뒷산으로 모여들었다.
그런 대로 영화를 끝내고 모든 기계를 정리하다 문득 영사기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웬일인지 머리가 하얀 노인 한 분이 영사기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울고 계시지 않은가. 내가 그곳으로 가서 물었다.
"할아버지, 좋은 구경하시고 왜 이렇게 울고 계십니까?"
할아버지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여보게, 이 조그마한 통 안에 무엇이 이렇게도 많이 들었소. 산과 들도 나오고 자동차도 사람도 수없이 나오니, 그 얼마나 신기한 것이오. 만일 내가 어제 죽었다면 어떻게 이런 것들을 구경했겠소? 내 생전에 이런 신기한 것은 처음 보았기에 나 스스로가 오늘까지 살아온 것이 기뻐서 울었소."
그 노인은 나이가 칠십도 넘어 보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순간 모든 피로가 일시에 사라졌다. 우리 나라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하고 뉘우쳐졌다. 나는 산을 내려오며 곰곰이 생각했다. 오늘에야말로 나는 삶의 보람을 가장 크게 느낀 것이라고. 그 노인은 지금은 고인이 되었겠지만, 만일 저승이 있다면 "나는 영사기를 보고 왔다"고 자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