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구가 한 계단을 사용하는 아파트의 3층에 사는 나는, 동이 트기 전에 조간 신문과 우유를 배달하는 아줌마의 분주한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5층 학생이 등교하면서 뚜르르 미끄럼 타듯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소리도 들린다. 3남 1녀나 되는 자식들이 결혼을 해서 떠나고 나니 기다리던 발자국 소리도 사라지고 말았다. 공연히 마음이 허전하고 고독이 스며들어 반가운 사람이라도 예고 없이 찾아왔으면 싶을 때는 내 식구의 발자국 소리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현관 문을 슬며시 열고 살필 때도 있다. 그런 나를 보고 영감이 말한다.
"이 시간에 어느 자식이 온다고... 막내를 기다리나. 이리 와 앉아요."
막내는 서른이 되도록 함께 살았다. 총각 시절 그 애는 회사 일이 바빠서 늦게 퇴근하는 날이 많았는데, 저벅저벅 구두 소리가 나면 초인종이 울리기도 전에 나는 문을 열고 "막내냐?" 하고 물었다. 그러면 아들은 "네, 접니다" 하고 대답하며 계단을 껑충 뛰어 올라 오며 히죽 웃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아들이 오는 것을 어떻게 알지?"
영감이 신기한 듯 물으면 이렇게 대답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차이지요."
그 발자국 소리도 결혼과 더불어 뜸해졌다. 외국에서 살다 돌아온 차남하고 살게 된 후에도 쑥쑥 가볍게 올라오는 기척이 아들의 발자국 소리가 분명하지만 문을 여는 것은 손녀의 몫이었다. 끌어안고 뽀뽀하는 상봉의 긴 장면이 끝난 후에야 아들은 "어머니, 다녀왔습니다" 하고 말했다.
고층 아파트에 사는 큰아들네에 가면 아들이 돌아올 시간에 승강기의 땡 하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딩동댕 하는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발자국 소리로 기다리는 사람을 점치는 낭만이 사라졌다고나 할까. 하찮은 일에 나만이 느끼는 허허로운 감정일까! 5층 건물인 아파트는 세월이 흘러 고층으로 재건축한다고 들먹거린다. 그러면 내 발자국 소리 진단도 막을 내리겠지.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교수 아파트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