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때 그렇게도 우리를 사랑하시던 엄마가 세상을 떠나셨다. 그로부터 얼마 안 지나 아버지마저 우리 형제를 남겨 둔 채 눈을 감으셨다. 기나긴 겨울 밤들은 무척 힘이 들었다. 동생 준구의 울음을 달래기가 가장 힘들었다. 무서워서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잠든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큰아버지가 온양에 살고 계셨지만 어쩌다한 번씩 들릴 뿐, 누구 하나 돌봐 줄 사람이 없었다. 절간 할머니와 옆집 아주머니가 와서 빨래도 해주시고 김치도 담가 주셨다. 4월 22일, 아버지 제사가 다가왔다. 큰아버지는 오지 않으셨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준구와 나는 도시락 두 개를 준하고 아버지께서 평소 즐겨 하시던 소주를 한 병 사 가지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계시는 산소로 갔다. 비가 오고 있었다. 우리는 도시락을 펴놓고 술을 부었다. 절을 하려고 서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우리는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며 엉엉 울었다.
(충남 보령군 청라중 3학년)
낙엽 케이크 - 정숙희
결혼 2주년 기념일을 앞둔 크리스마스였다. 그가 제안을 했다.
"우리 과천 대공원 가자."
'왜요?'하는 내 눈빛에 그가 말했다.
"크리스마스인데 먼 여행은 못 떠나도 가까운 데라도 다녀와야지."
그 무렵 그이는 낮에는 현장 기사로, 밤엔 야간 대학 3학년생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새벽 다섯 시 삼십 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출근하고 밤 열두 시가 되어야 집에 오는 생활. 평일에는 물론 휴일에도 숙제 때문에 더 바빠 커다란 상 앞에서 일어날 생각도 못하던 그였다. 그런 그가 그날은 큰마음을 먹었음에 틀림없었다. 그의 제안대로 우린 눈사람처럼 옷을 꽁꽁 챙겨 입힌 한 돌바기 아들을 앞세우고 과천 대공원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나섰다. 캐럴송이 울려 퍼지는 거리와는 달리 대공원은 고요함에 잠겨 있었다. 넓은 벌판은 어제 내린 눈에 잠겨, 보이는 것은 온통 눈천지였다.
남이 밟지 않는 눈 위에 발자국을 새기며 정신없이 아이와 노는 남편의 모습이 이날따라 무척 행복해 보였다. 아이는 흰 눈 위를 뛰어다니며 웃어대고, 남편은 아이를 잡으러 뛰어가고...... 그러더니 저쪽에서 그이는 흰 눈 위에 앉아 있는 내게 소리쳤다.
"거기서 기다려. 이쪽으로 오지 말라구."
"왜요?"
"아, 글쎄... 비밀이 있어."
멀리서 무엇인가 열심히 하는 남편이 보이고 아이는 제 아빠가 하는 모양을 흉내내고 있었다. 드디어 남편이 내게 손짓을 했다.
"이리 와 봐. 선물을 줄게."
"뭔데요?"
물으며 다가간 내 눈에 쏟아져 들어온 빛무리. 그이는 흰 눈발 위에 색색의 낙엽들을 주워 모아서 글씨를 써놓았다.
'축 결혼 2주년!' 낙엽 글씨. 이런 선물은 상상도 못했었다. 그이는 외투를 뒤적이더니 그 위에 호빵 두 개가 담긴 비닐 봉지를 꺼내 놓았다. 성탄을 축하하는 케이크 대신이라며. 흰 눈발 위의 그 선물이 내 눈에 들어온 순간, 입은 웃고 있었지만 내 눈시울이 자꾸 따뜻해져 옴은 왜일까? 그의 가슴속 온기 때문인지 아직도 따뜻한 호빵은 비닐 봉지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이가 말했다.
"미안해, 여보. 크리스마스인데 아무것도 못해 줘서 예쁜 선물을 해주고 싶었지만 당신이 주는 하루 용돈 1,500원으론 역부족이야. 하지만 내 마음 알지, 당신." (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