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8년 전, 집에서 50리 떨어진 중학교에 기차 통학을 하던 때의 일이다. 새벽 다섯 시면 어머니는 신기하게도 내게 줄 밥을 다 지어 놓으시고, 곤해서 계속 자려는 나를 흔들어 깨우시곤 했다. 어느 봄날, 그날도 세수를 하고 밥상을 대했는데 며칠째 억지로 먹고 있는 군내 나는 김치가 또 올라와 있었다. 김치 국물에는 허연 거품이 부글부글 피어 있어 보기만 해도 진저리가 났다. 그래도 나 때문에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억지로나마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금방 지은 밥으로 도시락을 싸면 밥맛이 없다며 뜨거운 김이 빠지길 기다리시더니 조금 뒤에 싸기 시작하셨다. 그때 도시락 반찬을 눈여겨보았더니 지금 먹고 있는 군내 나는 김치가 아닌가. 나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 숟가락을 놓고 가방을 집어 들었다. 왜 그러느냐는 어머니에게 기차 시간이 다되었다고 변명을 하고는 어머니가 그 도시락을 쌀 틈을 안 주려고 얼른 집을 나와 역을 향해 급히 걸었다. 나는 생각했다. '어머니는 내가 반찬 투정하는 줄 아실 거야. 그리곤 조금 섭섭해 하시면서 어쩔 수 없이 도시락을 내려놓으시겠지' 그날따라 내리는 가랑비를 맞으며 500미터쯤 갔을 때였다. 갑자기 뒤쪽 멀리서 애절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왔다. 돌아보니 어머니가 도시락을 들고 비를 맞으시며 힘겹게 달려오고 계셨다. 나는 그만 눈물이 핑 돌아 그 자리에 설 수밖에 없었다. 반찬 때문에 화를 낸 못난 아들을 어머니는 배 곯리지 않으시려고 저렇게 뛰어오시다니! 나는 말없이 도시락을 받았다. 그리고 목이 아프도록 속으로 울면서 남은 길을 갔다. (회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