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은 우리에게 정말 너무도 지루하고 혹독했다. 나와 내 남동생은 전쟁에 나갔던 외삼촌이 얻어 온 병에 감염되어 한겨울을 꼬박 춥고 어두운 방안에 처박혀 지냈다. 단 한 사람 어머니만은 무사해서 우리들의 병 수발을 들어 주셨는데, 말이 쉬워 그렇지 어머니로선 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극한 상황이었다. 마을에선 '염병집'이라고 우리 집 둘레에 새끼줄을 둘러치고 완전 격리시켜 우물물마저 길어 먹을 수 없었다. 그러나 삼촌과 동생은 끝내 그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언 땅에 묻혔다. 어머니는 원래 심신이 매우 허약한 분이셨다. 그전까지만 해도 동생과 내가 심하게 울며 보채거나 아버지가 난폭하게 주정이라도 부릴 양이면 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그대로 우리와 함께 울어 버리곤 하셨다. 천성이 워낙 착하신 데다가 외동딸로 자랐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으셨겠지만, 어린 나는 늘 어머니가 이웃의 드세고 강한 아줌마들과 비교되어 못마땅하게만 여겼다. 포성 속에 여름이 가고 낙엽이 쌓이는 굴참나무 숲길을 따라 징용당한 아버지가 떠나가던 그날도 어머니는 부엌 바닥에 쪼그려 앉아 한없이 울기만 하셨다. 그러니까 서른세 살인 그때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여전히 울보였고 살아가는 일에 있어선 차라리 산나리꽃이나 묏새보다도 자신이 없으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던 어머니가 어떻게 해서 그 고난에 찬 겨울을 살아낼 수 있었을까?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그것을 단순한 모성애라는 한 마디로 납득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했다. 과연 어머니의 내부 어느 곳에 그렇듯 치열한 의지가 숨어 있었을까? 그러나 어찌됐던 나는 아직도 바닷물처럼 출렁거리던 그 해맑은 봄날의 옥빛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그날 나는 앓아 누운 뒤 처음으로 양지 쪽에서 놀고 있는 내 또래 조무래기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따라 밖으로 나오던 길이었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곤 하지만 겨우내 한쪽으로만 누워 병을 앓았기 때문에 왼쪽 팔다리가 완전히 마비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애타는 노력으로 조금씩 걸음마를 새로 시작하고 있던 터였지만 아직은 기어 다니는 편이 편할 때였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나는 눈을 파고드는 강렬한 햇빛 때문에 그만 하늘이 출렁거리는 현기증을 느끼고 그 자리에 나둥그러지고 말았다. 얼른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팔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나도 동생처럼 죽어 버리고 마는구나.'
엄습해 오는 공포와 절망감을 떨쳐 버리려고 나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버둥거렸다. 그때였다. 마치 꿈속에서처럼 아련하게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오, 우리 현순이가 바깥 나들이를 나왔네. 장하기도 해라."
눈을 떠보니 어머니가 외삼촌과 동생의 무덤을 다녀오는 길인 듯 새하얀 옥양목 치마 저고리의 소복 차림으로 저만치 서 계셨다. 손에는 산에서 갓 꺾어 온 진달래꽃 가지가 한 움큼 쥐어져 있었다.
"엄마..."
나는 울먹이며 어머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곁으로 다가와 몸을 굽히고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조용히 말씀하셨다.
"한 번 너 혼자 일어서 보렴, 어제 방에서 하던 것처럼 말야."
진달래꽃 무더기에 반쯤 가리워진 어머니의 얼굴, 아니 그 두눈. 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것은 이미 예전의 그 나약하던,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 젖어 있던 그런 눈이 아니었다. 한없는 슬픔과 간구, 연민과 애정을 안으로 가라앉힌, 그러면서도 무한한 신뢰와 용기를 불러일으켜 주는 따스한 눈빛이었다. 그것은 가슴을 저미는 외로움과 싸우면서 혹독한 시련과 고생을 이겨 낸 어머니만의 두 눈이었다.
"응, 엄마. 이제 나 혼자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그때 이미 어머니의 그런 눈빛과 한 마디의 말만으로 모든 공포와 절망감을 물리쳐 버린 뒤였다. (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