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첫느낌 그 설레임으로 살고 싶다
이정하
슬픔은 우리 방황하는 사랑의 한 형태였다
너에게 달려가는 것보다 때로 멀찍이 서서 바라보는 것도 너를 향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겠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보다 묵묵히 너의 뒷모습이 되어주는 것도 너를 향한 더 큰 사랑인 줄을 알겠다.
너로 인해, 너를 알게 됨으로 내 가슴에 슬픔이 고이지 않는 날이 없었지만 네가 있어 오늘 하루도 넉넉하였음을......
내 생각마저 접으면 어김없이 서쪽 하늘을 벌겋게 수놓는 저녁해. 자신은 지면서도 세상의 아름다운 뒷배경이 되어 주는 그 숭고한 헌신을 보면, 내 사랑 또한 고운 빛깔로 바알갛게 번지는 저녁해가 되고 싶었다. 마지막 가는 너의 뒷모습까지 감싸 줄 수 있는 서쪽 하늘, 그 배경이 되고 싶었다.
시 '길의 노래' 전문
내게 첫사랑은 없었다, 라고 말을 하는 지금의 내 심경은 쓰라리다. 그건 내 사랑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이었으므로. 고백컨대 여지껏 나는 사랑에 늘 비켜 서 있었다. 독자들에게 나는 끊임 없이, 사랑이 어떤 아픔을 동반하건 상관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글을 써왔지만 정작 나 자신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건 마찬가지겠지만 종말이 있다는 걸 일찍부터 예감해서 일까. 사랑의 종말, 그건 다른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가슴 아픈 일이겠지. 그렇지만 시작도 못하고 가슴속에서만 머문 일이 있다면 그건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애초에 다가서지도 못했기에 붙잡을 수도 없었던 내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그랬다. 그 애만 생각하면 나는 가슴이 아리다. 그런 점에서 나는 카프카의 말을 겸허히 수용한다. 누군가를 생각할 때 그 사람이 자신에게 비수와 같은 존재이며, 그 칼로 인해 자신의 마음이 에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면 당신은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 그랬다. 그 애의 존재가 내게 그랬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딴전을 피우고 있었지만 내 몸의 세포는 모조리 그 애를 향해 뻗어 있었음을. 가을이었다. 그때도 지금과 같은 가을이었다. 우리들 마음속에 한잎 두잎 낙엽이 쌓이는. 바람은 길거리에만 부는 것이 아니라 내 공허한 마음속에 불어닥쳤고, 그리하여 나는 한자리에 있지 못했다. 사람의 가슴속에 부는 바람은 누구를 향한 갈망이 아닐까.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기에 내 안에 이는 흔들림.
난 교회에 들어서자마자 그 애부터 찾았다. 한 번도 그애와 길게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으면서 마치 그녀가 나만의 여자인 양 착각 속에 빠져있는 것도 그즈음 나의 행복이었다. 단아한 교복 차림으로 피아노 앞에서 성가대의 반주를 하고 있는 그애의 목덜미를 훔쳐보느라 나는 한번도 제대로 찬송가를 부르지 못했다. 하나님한테는 참으로 미안한 말이지만 엄숙해야 할 기도시간마저도 나는 눈을 뜨고 있었다. 그때 내게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면 그 시간이 더 길어져 더 오래 그 애의 모습을 훔쳐보는 것이었으므로. 그랬다. 그 애는 항상 내가 볼수 있는 거리에 있으면서도 잡히지 않는 그림자 같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애의 눈길 또한 늘 다른 곳에 머물러 있었기에, 성가대 지휘를 맡고 있는 김 선생님을 쳐다볼 때의 그 애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었다. 가끔 교회 벤치에 그 두 사람이 앉아 있는 걸 볼 때면 나는 태연한 척 애썼지만 그럴수록 더 큰 슬픔이 밀려와 내 가슴에 아픈 흔적을 남겼다. 애당초 그 애에게 다가서지도 못했기에 그 애를 원망할 수도 없었던 나는 한걸음 더 떨어져 그 애를 지켜볼 뿐.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아니 어쩌면 늘상 그 근처를 서성이던 내가 그 두 사람을 목격한 것은 밤이 깊은 시각이었다. 그 애를 집까지 바래다준 김 선생님이 돌아가던 모습을 그 애는 한없이 바라보고 있었고, 길 모퉁이에 숨어 그걸 지켜보던 나는 또 한없는 나락으로 스며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보고 있는 건 그 애의 텅 빈 육체뿐이었으므로. 나는 영혼까지 담긴 그 애의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그때의 그 애에겐 영혼이 없었으니까. 그 애의 영혼은 김 선생님을 따라가고 있었으니까. 그 애 곁을 줄곧 맴돌면서 정작은 한 걸음도 다가서지 못했던 나는 그날 이후로 골방에 처박혀 있었다. 멋모르고, 당연히 사랑은 달콤하고 황홀할 것이라고 상상하던 나에게 사랑은 너무나 혹독한 시련이었다. 긴 밤 내내 전해주지도 못할 사연들만 끄적이다 날이 뿌옇게 새던 그날들. 세상에는 사랑으로 인해 더없이 행복한 사람도 있겠지만 때로는 슬픔만 안고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그때 나는 알았다.
눈 오는 날엔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는 게 아니라 마음과 마음끼리 만난다. 그래서 눈 오는 날엔 사람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딴 데 가 있는 경우가 많다.. 눈 오는 날엔 그래서 마음이 아픈 사람이 많다.
'눈 오는 날'
어둡고 음습한 골방에서 그해 가을을 다 보낸 나는 겨울이 되어서야 거리로 나섰다. 마침 그 때 눈이 내렸다. 상처가 다 아물었다고 생각했지만 눈은 또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니다. 어쩌면 나는 내리는 눈을 빌미로 그 애를 한 번 더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 두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를 해줄 수 있다는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가을 내내 앓았던 내 열병을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고 싶었다. 교회 근처에 다가서자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어떤 곡인지는 몰랐지만 그녀가 치고 있다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저 그 애가 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은 떨렸고, 왠지 모를 슬픈 음률에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서야 했다.
온기로 환히 달아오르는 그대 얼굴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때로는 그대 가슴을 데워 주기 위해 내가 톱밥난로로 뜨거워질 때도 있어야 하리.
'톱밥난로'
그랬다. 나는 그 애가 치는 피아노 음률을 들으면서 그 애의 가슴을 따뜻이 데워주는 톱밥난로가 되어주기로 한 결심을 굳혀가고 있었다. 내가 짐작하기로 그 애가 하는 사랑도 결코 순탄치는 않을 것이었고, 만일 그렇다면 내가 그 애의 슬픔까지 넉넉히 감싸주는 더욱 성숙한 사랑을 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래, 그즈음 내가 느낀 것은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와는 멀어지도록 노력 하는 것이었다. 좁은 새장으로야 어디 새를 사랑할 수 있을까. 새가 어디를 날아가더라도 내 안에서 날 수 있도록 내 자신이 점점 넓어지는 것. 그것만이 그 애를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나는 깨닫고 있었던 것이었다. 예상대로 그 애는 피아노를 치다 말고 건반 위에 엎드려 흐느껴 울었다. 그날이 바로 김 선생님의 약혼식이 있는 날이었음을 나는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어 알고 있었고, 나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그 애의 슬픈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다. 용기를 내어 나는 그 애 앞에 다가섰고 울다만 얼굴로 그 애는 나를 쳐다봤다. 그때 난 처음으로 그 애의 눈을 정면으로 쳐다볼 수가 있었는데, 그날만큼은 피하지 않고 내 짝사랑을 들키고 싶었는데, 그 애는 참으로 가슴 섬뜩하게도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왜, 이젠 네 뜻대로 되어 속이 시원하니? 마치 그런 질책을 하는 듯한 그 애의 표정을 보고 내가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었을까. 내 진심을 어떻게 하면 그 애에게 전달 하 수 있을까 막막하던 나는 그만 고개를 속이고 말았고, 나도 모르게 한줄기 눈물이 내 발 밑에 툭 떨어졌다. 가슴이 아팠다. 아픈 것은 온전히 나였으면, 내가 아픈 것은 견딜 수 있었지만 그 애가 아픈 것은 견딜 수 없었다. 다시 용기를 내어 나는 조심스럽게 그 애의 어깨에 손을 내밀었고, 그 애는 뜻밖으로 내 가슴으로 무너져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 애의 눈물이 내 가슴에 스며들면 스며들수록 난 또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야 했던 그날, 그날은 그 애를 가장 가까이 두었으면서도 가장 멀리 느껴야 했던 아주 춥고 외로운 날이었다. 그 애의 따스한 마음 한 조각이라도 내가 가질 수 있었다면 그해 겨울은 그렇게 춥지 않았을 텐데.
그래, 10대의 마지막 겨울을 나는 그렇게 보냈다. 사랑하는 그 애로 하여 나는 외로웠고, 그 애로 하여 나의 외로움은 휠씬 구체적인 모습으로 내게는 절박했다. 마음속에 한 사람을 간직한다는 것. 마음속에 한 사람을 섬긴다는 것이 왜 그런 고독과 외로움의 수행이어야 하는지. 그래, 어쩌면 슬픔이란 것은 내 방황하는 사랑의 한 형태였는지도 모른다. 길을 잃고 헤매던 나. 그리움이 있어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 막막한 그 길에서 내 발은, 내 영혼은 다 부르트고.
이정하 - 1962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원광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 경남신문과 대전일보에 시가 동시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우리 사랑은 왜 먼 산이 되어 눈물만 글썽이게 하는가','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 겹다'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우리 사는 동안에',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