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시간이 될 무렵이었다. 약간 흥분된 모습의 활머니 한 분이 세무과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셨다.
"어제서야 세금 고지서를 받았어요. 그런데 납부 기한이 며칠밖에 남지 않은 데다가 세금이 너무 많이 나와서 납부기간까지 돈을 준비할 수 없어요. 다음달 초순쯤 할아버지 품팔이 대금을 받는데, 그때까지만 기한을 늦춰 주세요."
딱한 사정이었지만 법으로는 할머니를 도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할머니, 고지서를 두고 가시면 제가 대신 세금을 내겠습니다. 그러니 할아버지가 돈을 받아오시면 그때 돈을 가지고 오세요."
그러자 할머니는 공무원이 무슨 돈이 있느냐며 그냥 집으로 돌아가셨다. 며칠 후 납기일이 되자, 사무실은 민원인들로 시골장터같이 복잡해졌다. 그때였다.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저번에 오셨던 그 할머니가 서 계셨다. '세금을 준비하지 못해서 오셨나 보다'라고 짐작하고 있는 나에게 할머니가 반색을 하며 말씀하셨다.
"아저씨, 세금은 방금 내고 오는 길이에요. 그때 아저씨가 친절하게 대해 줘서 어떻게든 아저씨를 힘들게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돈을 빌려 세금을 내고 혹시나 내 걱정을 하고 있을까 봐 알려 드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