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괜찮아요......이까짓 다리 좀 불편한 것 사는데 지장없다구요!" 속상하신 나머지 어머니는 "그러게 누가 맏며느리 자리에 시집가랬더냐!" 하시며 내가 교통사고 당한 것을 시집 잘못 간 탓이라고 여기셨다. 종가집 맏며느리로 시집온 어머니는 시동생, 시누이 뒤치다꺼리와 일 년에 열 번이 넘는 집안의 대소사를 치르며 사십여 년 간 두 다리 죽 뻗고 자본 일이 없다고 자주 얘기하시곤 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한사코 말리던 종가집 며느리 자리에 막내딸이 시집간다고 했을 때 그 심정이 오죽했겠는가. 나는 잘살 수 있을 거라고 큰소리쳤지만 속으론 그 많은 시댁 식구들과 어떻게 맞추어 살아갈 지 걱정이 되었다. 그런 걱정이 점점 커지긴 했지만 예정대로 결혼식을 올렸다. 시할머님, 시부모님, 시누이, 모두들 내게 세심하게 잘해 주었지만계속되는 생일 잔치, 제사, 차례는 나를 몹시 힘들게 하였다. 그러던 중 시할머님 생신을 하루 앞둔 날, 시장에 다녀오다가 오토바이와 부딪힌 나는 중상을 입어 다리를 절뚝거리게 되었다. 병원에서 몇 달 간 치료를 한 뒤 나는 곧바로 친정으로 옮겨졌다.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도 잘 모르겟고, 시댁으로 돌아갈 업두 또한 나지 않았다. 남편과 시부모님이 자주 들러 "그만 집으로 오라"고 하셨지만 나는 차일피일 날짜만 미루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 시누이가 전화를 걸어 왔다. 시할머님이 새아기가 그리된 것은 모두 당신 탓이라며 식사도 제대로 안 하시고 우시기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시댁 식구들이 몹시 보고 싶어졌다. 전화를 끊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은 나는 돌아가리라 마음먹고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그런데 그날 밤, 아버지가 부르셔서 나가보니 시댁 식구들이 모두 서 있는 것이었다. 남편과 시부모님, 시누이, 시할머님까지..... 허리가 구부러져 몸이 새처럼 작은 시할머님은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새악아.....미안하데이."
그 길로 나는 챙겨 놓은 짐을 들고 시댁 어른들을 따라나섰다. 시댁 어른들의 배려 속에서 불편한 몸에 대한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선 나는 시할머님, 시부모님과 같이 살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