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으면 잠이 없어진다고 하더니 새벽녘이면 눈이 번쩍 떠진다. 방바닥에 비춰지는 창 크기만한 달빛을 보며 멍하니 앉아 있노라면 네 놈 생각이 불쑥불쑥 떠올라 목언저리가 저려온다. 세상에서 가장 불효막심한 일이 제 무모보다 먼저 세상을 뜨는 것이라던데 네가 바로 그 꼴이로구나. 심장마비로 네가 죽은지 벌써 일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네 엄마가 하루에 몇번씩 우는 통에 어제는 화를 좀 냈다. 텔레비젼을 보면서도 네 또래의 사람만 나오면 눈물을 흘리고, 밥 먹을 때 네가 않았던 자리를 보고 또 울고..... 그래서 아예 네 의자를 치워버렸다. 의자 뿐만 아니라 네가 쓰던 물건은 모조리 버렸단다. 네 엄마가 그것만은 안 된다고 눈물로 호소하던 사진까지..... 그런데 오늘 아침, 도장을 찾으려고 서랍을 뒤지다가 네가 고등학교 다닐 때 교복에 달앗던 명찰을 보게 되었다. 그걸 보니 네 장례 때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떨어지더구나.
고등학교 때 넌 무던히도 어미, 아비 속을 썪였었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권투한다고 체육관이나 들락거리고..... 어느날인가는 밤 늦은 시간에 어디서 먹었는지 술에 잔뜩 취한 너를 네 체육관 친구들이 업고 왔었지. 다음날 아침, 네게 처음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난생 처음으로 네 머리를 세게 후려쳤는데 넌 그때 가만히 맞고만 있었다. 오히려 내 팔을 부여잡고 말리려는 어머니를 네게서 떼어 놓았다. 그래서 난 더 때릴 수가 없엇는데 그날 밤 가슴이 무척 쓰리더구나. 한편으로는 반항하지 않고 맞기만 하는 너를 보고 '이젠 아이가 아니로구나. 다 자랐구나'하는 생각에 대견하기도 했단다. 아들아, 그땐 정말 미안했구나.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때리는 것이 아니었다고 얘기하고 싶었는데.....
아들아, 옆에서 자고 있는 네 엄마의 고른 숨소리가 들린다. 네 명찰을 보니 그간 네 엄마에게 네 생각 못하게 한 것이 후회가 되는 구나. 내일 아침에 이 명찰을 네 엄마에게 선물로 주어야 겠다. 그리고 실컷 울어볼란다. 우리 부부 울음소리 네가 있는 하늘까지 들리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