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유월이었다.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는 잔잔한 바람과, 코끝으로 전해오는 풋풋한 풀내음이 그날다라 얼마나 짜증스러웠는지 모른다. 친구들은 모두 즐겁게 놀고 있겠지하고 생각하니 울고 싶었다. 남들 다 가는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 것도 억울한데 이렇게 들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데 내게는 너무나 가혹한 벌처럼 느껴졌다. 실은 어머니가 수학여행비라며 옆집에서 꾼 오만원을 주셔서 그것으로 수학여행을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들 새 옷에, 새 신에다 넉넉한 용돈을 가지고 가는데 나만 빈손으로 가면 초라해 보일 것 같아 차라리 농사일이나 돕겠다고 남은 것이다. '이왕 도와 드리는 것 열심히 해야지.' 이렇게 생각했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하루 종일 어머니께 투정 부리고 짜증을 냈다. 그렇게 사흘 동안 일하고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어머니께서 신이나 한 켤레 사 신으라며 꼬깃꼬깃하게 접힌 이만 원을 내게 쥐어 주셨다. 오랜만에 잡아보는 어머니의 손은 많이 거칠었다. 다음날 나는 학교 갔다 오는 길에 어머니가 주신 이만 원으로 빨간 운동화를 사 신었다. 새 운동화에 흙먼지가 묻을까 봐 조심조심 대문을 들어서다 나는 그만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어머니는 못 쓰게 된 장판 조각에 발을 대고, 발 크기만큼 오리고 계셨다. 그리고 축담에는 닳고 닳아 밑창이 뻥 뚫린 허름한 신발 한 켤레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갑자기 새 신을 신은 내 발을 감추고 싶었다. 왜 진작 몰았을까. 당신은 장판을 잘라 헌신에 붙여 신으면서 자식에게는 새 신을 사 신기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그런 어머니에게 나는 마구 화를 낸 것이다.
"수학여행 가는데 옷 한 벌 안 사주고 용돈도 이것밖에 안 줘!"
그때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다음해 어버이날 나는 일년 동안 모은 돈으로 어머니께 하얀 구두를 선물했다. 하얀 구두보다 더 맑게 웃으시는 어머니를 보며, 내 마음은 그제서야 조금 편안해 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