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일주년을 맞은 우리 부부의 보금자리인 상도동 단칸방에는 큼지막한 책상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당시 야간 대학 이학년에 재학 중이던 나와 결혼식을 올린 아내는 주위에서 신랑의 직장생활과 공부 뒷바라지를 어찌 감당하겠느냐는 걱정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유독 장모님만은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결혼한 뒤에도 이년간이나 더 학교에 다녀야 했던 나는 중학교때부터 쓰던 낡고 작은 책상을 옮겨 오기로 했다. 아내의 집이나 우리 집이나 살림이 넉넉지 않아 결혼비용을 최대한 절약하자고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극구 새 책상을 사겠다고 했지만 나는 아내를 구슬러 간신히 마음을 돌려놓았다. 그런데 가구가 들어오던 날, 장롱과 화장대 뿐 아니라 주문하지도 않은 커다란 책상까지 배달되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나와 아내는 가구점에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았다. 가구점 주인은 책상은 맞게 배달되었으며 계산도 모두 끝났다고 했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장모님이 그 책상을 보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 딸 많이 사랑해 주고 공부도 열심히 하란 뜻이네!"
장모님의 말씀에 나는 그저 "네"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신혼의 단꿈이 젖어 있던 어느 날, 아내가 장모님이 이상하다는 말을 했다. 오전에는 항상 집에 안 계셔서 어디 다녀오셨느냐고 물으면 대답을 안 하신다는 것이었다. 장인어른께 전화로 살짝 여쭈니 식당에 나가신다고 하셨다. 건강도 안 좋으신 분이 어떻게 식당일을 하시겠냐는 생각에 나는 장모님께 식당에 절대 나가지 마시라고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장모님은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송서방 괜찮네. 운동삼아 아침에만 잠간 하는 일인데 뭐....."
그날은 그렇게 전화를 끊었지만 장모님이 식당에 나가신 이유는 우리 부부에게 사 주신 책상 값을 갚기 위해서라는 것을 나는 훨씬 나중에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