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연병장으로 밀려올 때쯤이면 난 어김없이 담배 하나를 물고 고향쪽 하늘을 쳐다본다. '모두들 잘 있는지.....' 가족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려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상교야! 편지왔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 마음이 벌써 고향집에 닿은 것일까. 편지 겉봉엔 익숙한 동생의 글씨가 가지런히 쓰여 있었다. 나는 정신을 어디에 빼앗긴 것처럼 한동안 어리둥절했다. 그것은 아버지가 보내신 편지였다. 연세가 칠십육 세나 되신 고령의 아버지가, 학교라고는 초등학교 근처에도 가 본일이 없으신 당신께서 손수 글을 적어 보내신 것이다. '상교야! 집 거정하지 마고 건강하게 군생활 열시미 해.....' 글씨를 제대로 읽고 쓸 줄 모르시는 아버지는 받침 생략과 띄워 쓰기도 엉망인 그저 소리나는 대로 삐뚤삐뚤 쓰신 편지를 보내셨다. 아버지의 글은 한동안 나의 몸을 마비시키는 듯했고 나는 부끄러운 기억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졌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금방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초등학교 때 어쩌다 소풍이라도 가는 날이면 으레 아버지께 오시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고, 또 가을 운동회때는 '아버지와 함께 뛰는' 경기가 있었는데 연세 많은 아버지와 함께 뛰어봤자 꼴찌가 분명할 테고, 남들 앞에 아버지와 함께 서는 것이 부끄럽기도 해서 슬그머니 숨어 버리곤 했다. 그때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쓰리고 서글프고 아프셨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죄송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비록 한글도 모르는 아버지시지만 나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굵게 팬 이마의 주름살, 궂은 농사일로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손등이 잘 말해준다. 그 사랑이 없었더라면 내 어찌 세상에 발을 붙이고 또 지금 이렇게 건강한 사람이 되었을까. 이런 부끄러운 자식을 위해 정성스럽게 편지를 써 보내시다니..... 나는 힘겹게 글을 쓰시는 아버지의 굽은 등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져 편지를 읽어 나갈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