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동생이 딸애의 옷을 사 줄 테니 집으로 오라고 전화를 했다. 딸애를 데리고 친정집을 들어서는 순간 엄마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웬 할머니가 "아이고 내 새끼 오냐?"하며 뛰어나오는데, 머리는 흰눈이 내린 듯 하얗게 새어 있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왜 그리 많은지..... 나는 속이 상해 "엄마 왜 이렇게 늙었어요!"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어머니가 내게 주신 보물이 있었다. 그것은 금반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값나가는 물건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다 날가 재봉틀로 여기저기 박아 꿰맨 꽃무늬가 잔잔히 수놓은 블라우스이다. 팔 년 전, 아직은 날씨가 쌀쌀햇던 추운 봄날이었다. 생전 처음 집을 나와 낯선 곳에서 직장을 얻어 새 생활을 시작할 때였다. 직장에서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 나는 시골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서류를 준비해 올라오던 날, 엄마는 막무가내로 나를 데리고 시장으로 가셨다. 직장을 다니려면 옷도 필요할 텐데 하시면서 엄마는 시장에서 제일 예쁜 꽃무늬 블라우스와 치마를 집어 드셨다. 나는 필요 없다고 말하고는 앞서 달렸다. 버스표를 끊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만치서 엄마가 꾸러미를 들고 나를 향해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 엄마의 모습이라니..... 엄마는 헝클어진 머리에 헐렁한 몸빼를 입고, 맨발에 파란색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제일 슬펐던 건 축 늘어진 엄마의 젖가슴이었다. 그것도 짝짝이로..... 당신은 그런 모습이면서도 자식을 챙기는 엄마가 한없이 고맙고 미안했다. 버스에 올라탄 나는 눈앞이 흐려져 엄마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봄비를 맞으며 서 있는 엄마도 울고 계셨다. 아직도 그때 사 주신 블라우스를 보면 엄마의 크나큰 사랑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