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중학교에 막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첫 시험이 있기 하루 전날이었다. 밤에 친구집에서 함께 공부를 하기로 한 나는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집을 나섰다. 주위는 임 컴컴한 어둠이 내려 앉고 있었다. 걱정이 되신 어머니께서 배웅을 나오셨다. 친구집이 있는 동네 어귀 모퉁이에는 밤이면 귀신이 나타난다는 무서운 소문이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하나도 안 무서우니 그만 가 보세요."
나는 몇 번이나 어머니께 집으로 돌아가시라고 말했지만 어머니는 조금만 더 가자며 자꾸만 따라오셨다. 한 고개를 넘자 친구네 집 불빛이 멀리서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이제 혼자 갈 수 있으니 그만 돌아가시라고 간곡하게 말씀드렸다. 그제서야 어머니는 알았다며 나의 등을 살짝 떠미셧다. 어둠과 적막은 나의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고갯길을 내려 산밑 좁은 길에 들어섰을 때 내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훈아!" "예?"하고 대답하니 어머니가 다시 말씀하셨다. "어서 가거라."
잠시 뒤 개울을 건너려는데 뒤쪽에서 어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셨다. 큰소리로 "예"하고 대답하니 어머니는 또 "그래, 어서 가"하셨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언덕길을 내려갈 쯤에도 모퉁이를 돌아설 쯤에도..... 내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친구네 동네 앞에 다다랐을 때 다시 어머니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는 목이 터져라 큰소리로 "예!"하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그 고갯마루 어둠 속에 계셨으리라. 내 이름을 끝까지 불러 주신 어머니의 목소리로 나는 무사히 친구 집에 도착하였다. 그날 밤, 친구와 엎드려 공부를 하는데 그 먼길을 홀로 가실 어머니의 뒷모습이 아른거려 공책 위로 눈물이 자꾸만 떨어졌다. 어머니는 이미 칠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지만 "어서 가거라"하시던 그 목소리는 지금도 나를 지켜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