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바리 부인 (Madame Bovary:1857) - 프로베르 (2/2)
그날 밤 그녀는 한잠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현기증이 이는 것 같은 정오의 기억이 아직도 온 몸에 감도는 것을 느끼고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녀는 머리맡에 거울을 집어 들었다. 거울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보고 그녀는 놀랐다. '어마, 내 눈이 어쩜 이렇게 클까? 그리고 이렇게 깊을까? 정말 나도 파리의 어디에 갔다 놓아도 조금도 손색이 없을 거야' 그녀는 처음으로 자기의 얼굴에 도취되었던 것이다. '아아, 나에게도 애인은 있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단 말야' 그 말을 되풀이하며 처녀 시절부터 꿈꾸던 일이 지금에야 실현된 것처럼 생각했다. 오랜 시일을 억눌려 막혀 오던 사랑의 둑이 기쁨에 넘쳐 한꺼번에 홍수를 이룬 것이다. 그녀는 사랑의 흥분 속에서 후회도 두려움도 그리고 고민도 느끼지 않는 사랑의 포로가 된 것이다. 그 다음 날도 승마를 핑계로 그녀는 새로운 기쁨의 밀회를 했다. 뜨겁고 긴 포옹이 끝나자 그들은 맹세를 했다. 영원히 변치 말 것을.
"로돌프, 당신은 나의 슬픔을 모르실 거에요. 숨이 막힐 것 같은 울타리에 갇혀 있는 한 마리의..."
"엠마, 아무 말도 말아요. 아무 말도"
그녀의 이야기를 막으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엠마는 눈을 살며시 감았다.
"로돌프, 다시 한 번 제 이름을 불러 주세요. 사랑한다고 해 주세요"
"엠마, 사랑해요. 사랑해요. 엠마!"
밀회는 행복의 불꽃처럼 즐거웠다. 그 날부터 두 사람은 매일 저녁 편지를 교환하기로 했다. 그녀는 뜰 가장자리의 개울 옆 울타리 사이에 편지를 끼워 두고 로돌프는 그것을 가져 가면서 편지를 두고 간다는 것이다. 어느 날 새벽 남편 샤를이 환자의 집으로 왕진을 가자 그녀는 갑자기 로돌프가 만나고 싶어져 유세트 장으로 달려갔다. 풀밭과 농장의 뜰을 지나면 로돌프의 집 현관이 있고 그 곳에서 큰 계단이 이층으로 통하게 되어 있다. 그녀는 살며시 문을 열었다. 커다란 침대에 로돌프가 잠들어 있었다.
"로돌프, 제가 왔어요"
난데없이 로돌프를 부르는 소리에 그는 벌떡 일어났다.
"아아, 엠마, 어떻게 왔소? 잘 왔소" 하고 그는 말했다.
"보고 싶었어요.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녀는 그의 목에 매달리며 소리쳤다. 남자는 새벽에 피어난 한 떨기 꽃과도 같은 이 아름다운 여인을 으스러지도록 끌어안았다. 이처럼 대담한 행동에 성공하자 그녀는 남편이 아침 일찍 외출할 때마다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는 개울로 통한 돌층계를 밟아 내려갔다. 로돌프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소를 무서워했다. 도중에 소가 있으면 숨을 죽이고 뛰어갔다. 이슬 길에 옷자락을 적시는 일이 마치 행복에 젖는 것처럼 즐거웠다. 언제나 그녀가 이렇게 헐떡이고 찾아가면 로돌프는 항상 자고 있었다. 그녀가 들어가면 로돌프는 새벽 이슬에 젖은 그녀의 머리를 바라보며
"엠마, 오늘 아침은 더 예뻐 보이는군. 엠마가 오면 이 방 안이 봄을 맞는 것처럼 훈훈해지거든. 자아, 나의 귀여운 엠마!"
하며 그녀를 끌어당겨 가슴에 안았다. 여자의 머리에 맺힌 이슬 방울이 보석처럼 빛나고 생기에 넘치는 미인의 얼굴을 더욱 아름답게 했다. 그리고 난 후 그녀는 방안을 자세히 살폈다. 가구의 서랍도 열어 보고 로돌프의 빗으로 머리를 빗어 보고 면도용 거울에도 모습을 비춰 보기도 했다. 헤어져 돌아오려면 십오 분이면 충분했다. 돌아올 때마다 그녀는 언제나 눈물에 잠겼다. 일생 동안을 그의 곁에서 떠나고 싶지가 않았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무서운 힘이 자기의 등을 로돌프에게 밀고 있는 것 같았다. 겨울 동안 일 주일에 서너 번씩 로돌프는 해가 저문 뒤 그녀의 집을 찾아왔다. 그는 그녀에게 신호로 모래를 창문에 끼얹었다. 그녀는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때로는 잠시 기다려야만 할 때도 있었다. 남편인 샤를이 왕진도 안 가고 난로 옆에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몸이 달아 안달을 하면서도 천연스레 화장을 하고 책을 들고 침착하게 재미있는 듯 읽었다.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샤를은 잠시 후 자리에 들어가 벽을 바라보고 잠이 든다. 남편이 잠이 들기를 기다려 그녀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살짝 빠져 나갔다. 로돌프는 그녀가 나오면 큰 망또로 그녀를 푹 싸서 허리를 껴안고 마당 구석으로 간다. 사랑에 도취된 그녀는 무척 센티멘탈해졌다. 조그만 초상화를 교환하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잘라서 주기도 했다. 후세를 약속하는 뜻에서 진짜 결혼반지를 갖고 싶어했다. 그녀는 몰라보리 만큼 아름다워졌다. 많은 여자를 경험한 로돌프도 이렇게 아름답고 순진한 여자를 겪어 본 적은 없었다. 그녀의 진실한 연애는 그에게 있어서도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밀회는 로돌프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띄거나 소문이 나는 일 없이 계속되었다. 그와 동시에 남편에 대한 그녀의 경멸과 냉대는 날이 갈 수록 더해졌다. 샤를이 어떤 환자의 수술에 실패했을 때 풀이 죽어서 수염이 꺼칠한 얼굴로 멍하니 서 있는 것을 보자 그녀의 불만은 절정에 이르렀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무능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을까 지금까지 쉴 새 없이 희생을 하고 꽃다운 젊음을 썩히다니 나는 이렇게 참고만 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녀는 이제 출구를 원하고 있었다. 로돌프를 만나자 그녀는 마음먹은 것을 얘기했다.
"딴 곳으로 가서 살아요. 이젠 정말 이렇게 밀회하기에 정말 싫증이 나서 견딜 수 없어요. 먼곳으로 가요"
그녀는 정말 샤를의 곁을 떠나고 싶었다. 로돌프와의 밀회가 있은 다음은 더욱더 그랬다. 뾰족하고 긴 손, 텁수룩한 수염, 멍한 눈. 그와 반대로 로돌프의 남자답게 헌칠한 이마, 까만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얼굴, 건장하고 멋있는 몸집. 그리고 잠자는 듯한 남편의 정욕과 달리 사자처럼 맹렬하고 불꽃처럼 튀는 로돌프의 정열 그녀는 초조하고 겁이 났다. 그를 놓친다면 그녀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로돌프,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을 만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아시겠어요? 이렇게 당신을 만나고 돌아서면 또 금방 당신이 보고 싶어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아요"
그녀는 로돌프에게 매달려 졸랐다. 로돌프는 보바리 부인의 정열에 끌려 함께 달아나기로 했다. 로돌프 같은 호색한도 이처럼 아름답게 다듬어진 보석과 같은 여인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로돌프는 마차의 좌석을 미리 사두고 여권도 내어 마르세이유로 같이 갈 계획을 세웠다. 로돌프는 출발을 이틀 앞둔 토요일에 찾아왔다. 그는 준비가 덜 되었다고 2주일을 더 연기했다. 그 다음에는 몸이 불편하다고 2주일을 연기했다. 또 다시 세번째는 급한 일로 어디를 갔다 와야겠다고 2주일을 연기했다. 로돌프는 이제 그녀에게 싫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의 성격으로 한 여자에게 얽매어 마음에 없는 객지 생활을 한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더 연기할 도리도 없고 해서 드디어 다음 월요일에는 무조건 출발하기로 했다. 떠나기 전날 밤 그들은 만났다.
"준비는 다 됐어요?"
"으음"
"잊으신 건 없어요?"
"으음"
"정말이죠?"
"물론"
둘은 화단을 한 바퀴 돌고는 축대 옆에 가서 앉았다. 그녀는 우울한 것 같은 로돌프를 바라보며 다급하게 그러나 조용히 물었다.
"로돌프 당신은 슬프세요?"
"그럴 리가 있소? 왜? 내가 그렇게 보이오?"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그의 눈은 다른 때와 달리 침착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이 사랑하던 온갖 것 당신의 생활을 버리고 갈 생각 때문에 그러시죠? 알 수 있어요. 그 심정 그러나 저는 이젠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어요. 제게는 당신만이 있을 뿐이에요. 제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당신은 모르실거에요"
"오, 귀여운 나의 엠마"
로돌프는 그녀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그녀는 요염한 몸짓으로 살포시 안기며 다짐했다.
"저를 영원히 이 행복 속에 가둬 주세요. 네? 그렇다고 맹세해 주세요"
"사랑하다 뿐이오. 마음과 몸을 다 바쳤는데. 엠마. 당신이 더 잘 알면서"
열두 시에 종소리가 울렸다. 두 사람은 월요일 아침 마차를 타고 이 마을을 떠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용기를 내요, 엠마. 용기를 나는 당신의 생활을 파괴하고 당신을 불행으로 이끌고 싶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만일 후회를 한다면 고통 속에서 우린 얼마나 괴로워해야 될 것인지? 아마 당신이 사회에 흔해 빠진 천하고 경박한 여성이었다면 나는 내 편리한 대로 도피 행위를 실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엠마. 그 동안 우리는 진실했습니다. 긴 날이 지나면 같이 앉아 지난 날을 얘기하며 다정한 친구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엠마. 우리의 지난 날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우리는 같이 떠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당신이 이 편지를 읽으실 즈음 저는 먼 곳으로 떠난 다음일 것입니다. 당신을 만나고 싶어하는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마음이 호수처럼 담담해질 때 돌아오겠습니다. 이것이 두 사람을 위한 행복이 아닐까요? 안녕'
다음 날 오후 그녀는 부엌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이 때 로돌프는 머슴 아이를 시켜 과일 바구니와 함께 이런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그녀는 미친 듯이 자기 방으로 뛰어갔다. 그 곳에는 공교롭게도 남편이 있었다.그녀는 후다닥 뛰어나와 3층으로 해서 헛간에 들어갔다. 마음을 단단히 가다듬으며 그녀는 창가에 기대어 편지를 읽었다. 분노와 증오가 가슴을 에워싸고 불길을 이루었다. 로돌프의 배신 그러면서도 그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손에 든 편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면서도 다시 한 번 읽으려고 했으나 머릿속이 어지러워 읽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죽고 싶었다. 창으로 뛰어내리려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때 아래층에서 하녀가 부르는 소리에 위기를 모면했다. 억지로 저녁 식탁에 앉았을 때 집 옆으로 파란 마차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 마차 속에 여행 준비를 한 로돌프를 발견하는 순간 보바리 부인은 기절하고 말았다. 결국 그녀는 병석에 눕게 되었다. 한 달쯤 지나서 그녀는 겨우 침대 위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점점 회복되어 낮에도 몇 시간 일어나 앉아 있을 수도 있었다. 하루는 다른 때보다 기분이 좋다고 해서 샤를은 그녀를 부축하여 뜰을 거닐었다. 정원 깊숙이 의자 옆까지 왔다. 그녀는 조용히 머리를 들고 멀리 바라보았다. 지평선에는 여기저기에 낙엽을 태우는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여보 여기 좀 앉읍시다"
"싫어요 거긴"
그녀는 별안간 눈앞이 캄캄해 오는 것을 느꼈다. 그 통나무 의자는 로돌프와 몇 번이나 뜨거운 키스와 몸과 마음이 녹을 듯한 포옹을 하던 자리였다. 그 날부터 그녀는 병이 더 커졌다. 병세는 심해 그녀도 주위의 모든 사람도 그녀의 죽음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성체를 받고 싶어했다. 신부가 불려오고 형식적인 식이 거행되었다. 성체를 받은 후 그녀의 건강은 눈에 띄게 회복되어 갔다. 그 다음 해 이른 봄 그녀는 완쾌했다. 동시에 지금까지의 반대로 신앙심이 깊은 여자가 되었다. 그녀는 마을에 가난한 가정을 위해 옷도 만들어 보내고 난산으로 고생하는 집에는 장작을 보내 주기도 했다. 남편 샤를에게는 착한 아내가 되고 딸 베르트에게는 좋은 엄마가 되었다. 건강하고 명랑해졌으며 얼굴에는 화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이 그 여자에게 근본적인 안정과 만족을 갖다 주지도 못했다. 어느 날 그녀는 샤를과 함께 유명한 라가르디의 오페라단이 루앙에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구경을 갔다. 그 곳 극장에서 그녀는 파리에 간 그 옛날의 레옹을 만났다. 레옹은 파리에서 공부한 후 이곳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바리 부인은 맵시 있게 차려입은 레옹을 보았을 때 지난 날의 연모가 다시 살아옴을 느꼈다. 레옹도 자기의 심정을 고백할 용기가 없어서 헤어지고만 여인을 우연히 다시 만날 것을 기뻐했다.
"아니, 어떻게 해서 당신이 여기에... 그럼 루앙에 와 계신가요?"
"네"
"언제부터?"
"조용히"
하고 옆 사람이 말했다. 오페라의 막이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부터 그 여자는 벌써 무대에는 관심이 없었다. 레옹을 처음 만나던 때 딸의 유모의 집으로 가다가 만나서 산책하던 일, 난로 옆에서 마주 앉아 얘기하던 일, 정자 밑에서 책을 읽던 일, 레옹과 관계는 모든 것이 조용하게 조심스러웠고, 귀여웠던 그 가련한 연정이 가슴을 울렁대고 살아나는 것이다. 샤를은 일이 바쁘기 때문에 오페라를 더 구경하겠다는 그녀를 루앙에 맡겨 두고 먼저 가버렸다. 다음 날 레옹은 그녀의 호텔로 찾아왔다. 삼 년만의 해후에서 레옹은 파리에서 익힌 기교로 그리고 그녀는 로돌프와의 경험에서 얻은 용기로 그들의 사랑은 거침없이 불꽃을 튀겼다.
"저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었으나 여인숙에서 만나던 그 때부터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레옹의 고백을 듣자 보바리 부인은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저도 눈치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음성은 부드러웠다.
"그러나 저는 이제 할머니가 다된 걸요. 레옹 당신은 아직 젊어요. 저 같은 것 잊어버려야 해요. 젊고 싱싱한 새로운 여자를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을 텐데"
"천만에요. 저는 파리에서도 언제나 당신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마, 당신은 정말 철부지로군요. 우리가 서로 결합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의 눈은 레옹을 더듬고 있었다. 레옹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끼고 그녀를 포옹하며 애무하려 했다. 그러나 레옹의 애무는 장년의 로돌프처럼 대담하지 않고 성급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젊은이답게 약간 겁을 먹은 듯 조심스럽게 그녀를 애무했다. 레옹의 내향적인 성격이 그녀에게 커다란 유혹이었다. 남자가 이렇게 아름답게 보이기도 처음이었다. 그의 손길에서 그녀를 차지하려는 정욕으로 붉게 물든 레옹의 뺨을 내려다보며 엠마는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아 정말 사랑스러운 젊은이야. 이 건장한 육체' 그러나 거기에서 레옹을 그냥 돌려 보냈다. 그것은 그녀가 안간힘을 쓰면서 견뎌낸 이성 때문이었다. 다음 날 그녀는 레옹과 함께 이 마을의 오래되고 유명한 사원을 보러 갔다. 그 사원을 나오자 두 사람은 마차를 탔다. 이 마차는 상자형이었는데 타자마자 레옹은 커튼을 내려 버렸다.
"어디로 갈깝쇼?"
"어디든지 좋은 곳으로 갑시다"
마차는 그랑 퐁 거리를 지나 데자르 광장 나폴레옹 강둑 그리고 뇌프 다리를 지나 피에르 코르네이유의 상 앞에서 멈췄다.
"좀더 달려"
안으로부터 열에 들뜬 소리가 났다. 마차는 다시 움직였다. 라파예트 광장 네 거리를 지나자 길을 똑바로 달려 옆으로 들어갔다.
"더 앞으로 가"
안에서는 여전히 고함을 질렀다. 마차는 철둑을 지나 가로수 길을 천천히 달렸다. 마부는 이마에 땀을 씻으며 가죽 모자를 무릎 사이에 끼고 물가 잔디밭 가까이 갔다. 식물원 앞에서 세번째로 섰을 때
"더 가!"
전보다 더 강하게 마차 안에서 소리쳤다. 마차는 그대로 달렸다. 왔던 곳을 또 오고 또 달리고 그래도 안에서는 다 왔다는 말이 없다. 마부는 하는 수 없이 달린 곳을 또 달리고 쉴 새 없이 채찍질을 했다. 마부와 말은 똑같이 피로해져서 견딜 수가 없어졌다
"젠장 병들이 났나?"
혹시 병이나 난 것이 아닌가 해서 마차를 세우면
"더 가 앞으로 더 가"
안에서 소리를 버럭 지르는 바람에 마부는 앞으로 달리면서 울상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도 커튼을 내린 마차가 몇 번이나 같은 곳을 지나가기 때문에 이상스러운 듯이 바라보았다. 황혼이 깃든 여섯 시쯤 되어서야 겨우 마차는 보브와진느의 어두운 뒷골목에 멈추어 서고 그 속에서 한 여자가 내리더니 베일을 쓴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마른 나무에 한 번 불을 지피면 아주 잘 타오르기 마련이다. 보바리 부인은 다음 날 루앙에서 돌아왔으나 마음은 루앙에 있는 레옹에게만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루앙에 갈 핑계만 찾고 있을 때 남편이 수표 때문에 곤란을 받고 있는 것을 알자 법률적인 지식이 있는 레옹에게 의논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하고 루앙으로 나왔다. 그 곳에서 삼 일 간 두 사람은 밀월과 같은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두 사람은 배를 저었다. 달이 뜨자 그녀는 노래를 불렀다.
고요한 밤에 달빛 아래를 나는 노를 저어 그대 곁에서 웃음 지으며 뱃놀이를 했지...
레옹은 부인이 돌아가자 부인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백만 장자가 고향을 찾아가듯 도도한 기분으로 용빌르 라베이에 들어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샤를은 레옹의 방문을 무척 반가워했다. 그 날 밤이 깊어서야 앞 마당의 좁은 길에서 보바리 부인과 레옹은 처음으로 단둘이 만났다. 로돌프와 만나던 그 자리에서 마침 폭풍우가 쏟아져 둘은 번갯불에 비치면서 우산 속에서 속삭였다. 그녀는 헤어진다는 것이 참을 수가 없었다.
"아아, 죽어버렸으면 이대로 죽는 대도 후회는 않겠어"
그녀는 남자의 팔 속에서 몸부림치며 울었다.
"안녕히 언젠가 또 만날 수 있을 테죠"
둘은 되돌아와서 포옹을 했다.
"레옹.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께"
그녀는 레옹에게 이렇게 말했다. 요행히도 그 기회는 쉽사리 왔다. 그녀는 피아노를 조금 칠 수가 있었다. 샤를은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은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그녀가 피아노 치는 것을 즐겨 들었다. 그녀가 좀더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해서 일 주일에 한 번 루앙에 가서 음악 교사에게 레슨을 받고 싶다고 하자 샤를은 두말없이 찬성하였다. 그로부터 그녀는 매주 목요일마다 루앙으로 나가 레옹과 밀회를 했다. 목요일만 되면 소풍을 서두르는 어린애처럼 남편이 아직 잠들고 있을 때 준비를 끝마치고 루앙으로 마차를 달리는 것이었다. 루앙에 도착하면 멀리서 마차를 내려 뒷골목으로 뛰어갔다. 어떤 모퉁이를 돌아서면 레옹이 벌써 기다리고 있었다. 모자 밑으로 나온 머리카락으로 레옹임을 곧 알 수가 있었다. 레옹은 앞서서 들어간다. 방에 들어가면 빨간 터키 산의 비단 커튼이 천장에서부터 내려와 두르고 있다. 그녀는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가린다. 아름다운 팔로 가리울 때는 이 커튼의 주홍색과 대비되어 까만 머리와 횐 살결처럼 아름다웠다. 일 주일 동안 그리웠던 그리움이 한꺼번에 복받쳐 올랐다. 별로 할 이야기가 없을 때에는 그녀는 달콤한 우수에 잠기면서 말했다.
"아아, 당신은 멀잖아 나를 버릴거야. 그리고 결혼을 하겠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라니?"
레옹은 물었다.
"즉 세상 남자들 말이에요"
그녀는 대답했다. 그리고 서글프게 레옹을 밀쳤다.
"남자란 모조리 염치없는 물건이라니까"
그러면서 그녀는 다시 그에게 숨이 막혀버릴 듯이 속삭이는 것이었다.
"아아 움직이지 말아요. 입을 열지 말아요. 나만 바라보세요. 아이 한눈을 팔면 싫다니까"
그녀는 베이비라고 불렀다.
"베이비 내가 좋아?"
그녀가 레옹의 정부였다기보다는 오히려 레옹이 보바리 부인의 정부의 위치에 놓인 것이다. 그녀는 상냥한 말씨와 혼을 뺏는 듯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레옹은 말 할 수 없이 미묘한 여성미를 처음으로 맛보았다. 그녀는 남편에게 집에만 있을 때보다. 한결 잘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낙화생크림을 만든다든가 식사 후에는 루앙에게 배웠다고 새로운 왈츠곡을 치곤 했다. 그래서 남편은 그녀를 조금도 의심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사랑의 환락을 즐기려면 돈이 필요했다. 레옹의 박봉으로 모라자는 돈은 전부 그녀가 지불해야만 했다. 그 외에 집안 생활도 화려해져서 커튼과 양탄자 드레스 몇 벌 화장품 값 등 2천 프랑 이상의 계산서가 밀렸다. 남편이 알면 기절할 금액의 빚이었다. 남편 모르게 비밀로 한 것이 모르는 사이에 이자가 늘고 또 어음으로 바꾸어 쓰고 한 것이 눈이 쌓이듯 늘어만 갔다. 그녀는 신경질이 났다. 이젠 어음의 금액이 8천 프랑 가까이 되었다. 이럴 때 그녀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은 레옹과의 밀회뿐이었다. 레옹은 약간 겁이 났다. 향락으로만 줄달음치려는 그녀. 그리고 식욕과 향락이 거의 병적으로 늘어만 가는 그녀에게서 빠져 나오려 하면서도 그녀만 만나면 그녀의 세계로 휘말려 들어가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열렬한 사랑에도 고비는 있는 것이다. 그 고비를 넘기면 그 곳에는 암담하고 뛰어넘기 어려운 절벽이 있는 것이다. 레옹의 어머니는 레옹이 유부녀와 불의의 쾌락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자 레옹의 직장 주인에게 사정 편지를 냈다. 그 주인이 레옹의 장래를 염려하여 경고를 했다. 그 경고를 받은 레옹은 자기들의 애욕이 오래 지속할 성질의 것이 아님을 알고 두 번 다시 그녀를 만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험한 곳에서 장난을 하다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지기 마련이다. 보바리 부인도 이와 같은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레옹과 이별을 하자 그녀는 부채에 대한 기한이 임박하여 가산이 차압을 당하게 되었다. 그녀는 절망 속에서 돈을 만들기에 바빴다. 처음엔 레옹을 찾아갔다. 가서 돈 이야기를 해 보자고
"뭐요. 8천 프랑이요? 어떻게 내가 그렇게 큰 돈을...미안합니다만 나는 실례하겠습니다. 안녕히"
레옹은 이렇게 꽁무니를 빼고 마는 것이었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그런 거액의 돈을 융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자 최후 수단으로 로돌프를 찾아가 애원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로돌프는 그녀를 보자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담배를 문 채 그녀를 맞았다.
"부인 오래간만이군요.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그는 지난 날의 정욕이 솟아오르자 그녀를 포옹하고 말았다.
"아아 용서해 주십시오. 내가 좋아한 건 역시 당신이었소 나는 바보요. 나쁜놈이요. 그러나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언제까지나"
보바리 부인의 뺨에는 차가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이제는 매춘을 하러 왔구나'하고 생각하니 기가 막힌 자기의 운명이었다.
"아녜요. 아녜요"
그녀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자기는 지금 파산의 운명에 몰렸으며 그것을 구해 줄 사람은 당신 외에 없으리라 생각하고 찾아왔다고 이야기하자 로돌프는 갑자기 떨어져 서며 냉정해졌다.
"미안합니다만, 당신에게 융통할 만한 돈은 한 푼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마지막 시도도 수포로 돌아갔다. 금전의 요구라는 것이 사랑 위에 떨어지는 모든 회오리 바람 가운데 가장 차가운 그리고 가장 환멸을 느끼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엠마는 한참 동안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렇게 비굴한 말을 하지 말 걸 당신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군요. 당신도 다른 사람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군요"
그녀는 진심을 토로했다. 정신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보바리 부인이 돌아갈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그녀는 죽음의 길을 택하기로 했다. 아니 선택이 아니라 하나의 운명이 그녀에게 준 마지막 유일한 출구였던 것이다. 힘없이 집을 향하던 엠마는 남편의 병원에 들러서 마침 약제실에서 홀로 일하고 있는 약제사로부터 다락방 열쇠를 빼앗았다. 그리고 전에 눈에 익혀 둔 다락방 약장에서 독이라 쓴 흰 약을 한 주먹 집어서 입에 털어 넣었다. 시체처럼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리고 눈을 멍하니 뜨고 입을 벌리고 일어나려고 했다. 숨소리가 점점 그녀의 입에서 거칠어졌다. 마지막 자리를 마련하려고 온 신부가 라틴어로 속삭이는 기도도 빨라졌다. 기도 소리는 샤를의 참으려는 울음소리와 섞여 때로는 애도의 종처럼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아아 상쾌한 날이야"
"낫으로 베어 버린다"
"장님이다. 장님이야"
엠마는 뜻 모를 소리를 부르짖었다. 그리고 깔깔대고 웃기도 했다. 잔인하게 미친 것처럼 절망적으로 웃었다.
"그 날은 바람이 몹시 불었다. 그래서 짧은 치마가 말려 올라갔어!"
경련이 그녀를 쓰러지게 했다. 모두들 가까이 갔다. 그녀는 이제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녀는 결국 죽고 말았다. 그것은 그녀가 그렇게 갈구하던 꿈과 사랑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꿈과는 거리가 먼 돈 때문에 죽은 것이다.
엠마가 죽은 며칠 후에 샤를은 로돌프와 레옹에게서 온 편지를 발견하고 그의 아내가 자기를 속이고 있었음을 알았다. 샤를은 아내의 부정에 문을 걸어 닫고 사람의 눈을 피했다. 그에게는 배반당한 분노 때문에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다. 그는 도무지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는 햇빛이 쪼이는 뜰의 벤취에 앉아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을 견디고 있었으나 언제까지나 그대로 둔다면 그는 영원히 그렇게 앉아 있을 것처럼 언제까지나 앉아 있었다. 저녁이 되어 그의 딸이 아버지를 찾아 뜰로 나왔다. 딸은 아버지가 장난하기 위해 그렇게 앉아 있는 줄만 알고 뒤로 가서 그의 아버지를 가만히 밀었다. 샤를 보바리는 그대로 엎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죽었다. 일체의 물건을 팔아 넘겼을 때 남은 돈이란 겨우 보바리 양이 할머니댁에 갈 여비뿐이었다. 그 할머니댁도 가난하여 보바리 양은 할 수 없이 방직 공장에 다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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